일, 「한반도안보」엔 일단 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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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외상회담이 21일 2일간의 일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회담은 일의??수의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먹서먹한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두나라가 한국의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우호협력관계를 수립하는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일본은 65년 한일국교정상화이래 한국을 도와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수지계산서는 2백5억달러의 대일무역적자와 13억달러의 공공차관을 공여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GNP의 6%, 예산의 35%를 국방비에 투입, 북괴의 위협을 저지함으로써 이웃 일본과 아시아는 물론 자유세계 전체에 대한 보루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덕으로 일본은 공짜안보의 혜택을 누려왔다.
한국이 이번 회담에서 일본측에 『일본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협력』을 희망하고 구체적으로 5년간 60억달러의 공공차관을 요청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은 안보문제와 경제협력을 순치의 관계로 이해해 줄 것을 바랐으나 이점에 관해서만은 일본측이『방위분담적 발상에 의한 경제협력은 할 수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안보와 경협을 분리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본태도의 일관성이 없음을 또 한번 드러낸 것이다. 미일정상회담 공동성명(5월) 제9항을 보면『새로운 중기목표아래 정부개발원조의 확충에 노력하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를 위하여 중요한 지역에 대한 원조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라고 안보와 경협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했다.
또 일본도 참석한 서방7개 공업국정상회담의 「오타와선언」에서도 『세계안보전략과 경제협력은 불가분의 관계』(1항·36행)라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일본이 이번 외상회의에서 안보와 경협의 분리를 주장한 것은「스즈끼」수상이 서명한 이런 두「기본정신」과는 완전히 모순된 것이었다.
다만 일본이 북괴의 위협과 한국의 방위능력을 평가한 것은 한국의 안정이 일본의 안정에 직결된다는 72년 「닉슨」 「사또」(주등) 공동성명을 재확인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측으로는 명분론에 있어서는 한국측 주장에 따르고 실리면에 있어서는 일본측 주장대로 안보와 경제협력문제를 연결시키지 않고 상호의존관계와 연대성의 차원에서 경제협력을 증대해나갈 뜻을 밝힌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기반조성에 그친 만큼 이번 회담의 알맹이이라 할 수 있는한국측이 제시한 60억달러 공공차관 제공요청에 일본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의를 보이느냐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넘겨졌다.
양국은 오는 9월10, 11일 서울에서 정기각료희의를 갖기로 했고 외상회담도 수시로 갖는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한경제협력 규모는 이 같은 일련의 회의를 통해 논의된 뒤 앞으로 있을 한일정상회담에서 최종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 일본측의 전략인 것 같다.
일본의 대외협력은 ⓛ민생안정 ②상호의존 ③안보협력 등으로 분류할 수 있고 자금의 규모는 안보협력이 가장 크고 민생안정이 가장 작다. 일본이 경협을 안보협력차원으로 규정짓지 않으려는 것도 협력규모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풀이될 수 있다.
일본의 대외공공차관 총규모는 연33억달러로 앞으로 45억달러까지 증액할 계획이어서 한국이 요청한 경협규모 60억달러(5년간)는 1년에 12억달러 꼴이므로 그리 많은 규모로 볼 수 없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측은 한국대표단이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진지한 자세로「성의 있는 협력」을 한국측에 다짐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국민은 일본의 외교자세에 대해 그동안의 행적에서 적지않은 회의를 가져왔다.
노골적으로 약속을 외면한다든가 형식적으로만 약속을 지키는체 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빈축을 사왔던 전례가 많았다.
이번 회담에서만 하더라도「소노다」(원전직) 외상은 회담을 하루 앞두고 한국의 주장을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판하는가하면 회의도중에도 합의를 어기고 회담내용을 합의사질과 다르게 발표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함으로써 한때 회담을 결렬위기로까지 몰고 갔었다.
국가와 국가간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를 갖는다는 것이다. 만일 일본이 앞으로의 대화과정에서 『대한경제협력에 성의를 다하겠다』는 이번의 약속을 저버리고 한국에 실망을 안겨준다면 한일관계에 다시는 희복할 수 없는 파국을 맞게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이번 두 나라 외상회담은 대등한 협력관계를 이룰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는 뜻에서 「제2의 한일국교정상화」라고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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