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욱의 유고집 『시신의 주소』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작년 4월16일 55세의 한참 나이에 별세한 시인이며 영문학자인 송욱씨의 시·시작노트·단상 등의 유고가 유족과 정명환·김현 교수(서울대·문학평론가)의 정리에 의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시작품을 통해<치경 같은 정치><회사 같은 사회><현금이 실현하는 현실>등 단어를 전도시켜 풍자와 익살로 현실을 비판했던 송씨는 작고하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시작활동이 그리 활발치 않았으나 이번 유고집의 출간으로써 그가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계속 시에 대한 왕성한 정열을 품어왔음을 보여 주었다.
송씨 자신이 다음시집의 제목으로 정했던『시신의 주소』를 제목으로 한 이 유고집은 제1부『도의 생리학』, 제2부 『일기 및 시작노트』로 나누어져 1백30여편의 글을 싣고 있는데 모든 글들이 시적 표현의 형식을 빌고 있어 한시인의 전모를 살필 수 있다. 특히『일기 및 시작노트』에 수록된 글들은 78년3월21일에 쓴 『옥지이 말굽을 울리며』로부터 작고하기 10여일 전인 80년4월3일에 쓴 2행 짜리 글에 이르기까지 편마다 쓴 날자가 기록돼 있다.
이 유고집의 의미를 『시인 송욱의 새로운 탄생을 세상에 고 하는 것이다』고 한 정명환 교수의 말대로 문단에서는 이 유고집의 출간을 계기로 시인 송욱의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맑은 빚과 색깔이 아롱진 초기의 서정시의 단계를 지나 매섭게 쏘아붙이는 풍자시인이 되었고, 허무와 초탈이 얽히는 쓰디쓴 아이러니를 창조의 원리로 삼았으며, 이윽고 육감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한데 어울리는 영육일치의 경지를 펼쳤던』송욱씨의 시 세계가 총체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79년5월17일에 쓴 『삼만육천 밤을 내내』에는<가을이슬은 옥처럼 희다 뜰 안 나무잎 풀잎에 동글동글 방울져 맺힌 구슬을 지나치면서 문뜩 보았다!>라는 것이 있는가하면, 79년9월에 쓴 제목 없는 글에는 <중노동은 있지만 경노동이 없다 경음악은 중음악이 성시장보다 오래 가는 시장성이여>라는 표현이 있고, 78년6월21일에 쓴『지족부』은<극락세계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학장만 그만두면 아아 살아서도 올 있구나 극락세계로!>라고 써 시인으로서 학장직(당시 서울대 인문대 학장)맡는 일의 어려움을 적는 등 다양하다.
아뭏든 사후 유고로 재평가 받은 문인이 없었던 우리문단에서 송욱씨의 경우는 특이한 전례를 남길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