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 대통령 선거등으로 열중할때 소는 항상 위기를 조성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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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으로 빚어진 동구의 위기상황은 소련의 56년「헝가리」, 68년 「체코」 침공당시와 상황면에서 우연히도 몇가지 흡사한 면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소련의 대미관계면에서 볼때 56년 (「아이젠하워」 행정부), 68년(「존슨」행정부)은 모두 미국이 대통령선거로 국내문제에 에너지를 한참 소모하는 중이거나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이었다.
또 56년 이후 소련의 대외군사 개입의 이른바 『12년 주기설』 에 맞추어 보면 80년은 「레이건」 새 행정부의 등장과 두가지면에서 상황이 일치되고있다.
이외에도 소련의 대미「도전」으로 간주되는 노골적인 대외 개입이 있었던 해는 대개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 였다는 통설에도 80년이 포함된다. 이 경우는 소련이 미국의새 대통령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설명 돼 왔는데 62년의「쿠바」미사일위기(60년 당선된 「케네디」 행정부당시) 도 비슷한 예.
가까운 예로는 79년·12월말의 「아프가니스탄」개입도 포함된다.
현재「폴란드」문제를 대하는 소련의 태도에도 68년「체코」개입 당시와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68년6월27일「체코」지식인들의 자유화를 위한「2천어 선언」이래 소련노선을 이탈 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 되자 동구 매스컴을 동원, 맹렬한 비판을 가하면서7월17일 소련·동구5개국 수뇌가 긴급회의를 열어 「체코」정부에 긴급서한을 보낸후 8월20일 침공했다. 현재「프라하」에서 동구수뇌들이 모인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소련의「사회주의 형제국」의 개입에는 꼭 한가지 형식절차가 따른다. 당사국정부의 개입요청이라는 구질이다. 56년 「헝가리」 , 68년 「체코」 , 74년「아프가니스탄」개입매때이런 구실이 붙여졌다. 언제고 동구수뇌들이 의견을 모으는 형식으로「폴란드」개입을 결정한다면 「체코」개입 당시와 같은 유형을 따를 가능성이 클 것같다.<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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