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다는 감정 어린 진실 담아야|개나리 방실방실…식은 공감 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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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상에는 두 가지의 진실이 있다. 즉 사실의 진실과 감정적인 진실이다. 사실의 진실이란 누구나가다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이요. 감정적인 진실이란 공감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주관적인 진실인 것이다.
이번 회의 응모 시조 가운데에는 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개나리가 방실방실 웃고 있네 식의 사실에 입각한 표현에 머무르고 있다.
아무리 내가 아름답게 느끼는 꽃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저 범속하게 느낄 수도 있다. 아름답게 느낀다고 하는 것은 주관적인 감점이지만 그것을 실감하여 확신하게 되면 감정적인 진실이 되는 것이다.
안강환님의 『어린이와 봄』, 이석민님의 『봄』, 이국헌님의 『동백꽃』, 김홍길님의 『조춘야』, 세째딸의 『봄비』, 돈대섭님의 『춘란』, 김강호님의 『봄밤』, 정영배님의 『초봄마곡사』, 양승태님의 『춘설』등엔 모두 봄을 서정했을 뿐 감정적인 진실이 결여되어있다. 그런 가운데에서 양승태 이영주님의 작품을 가까스로 건져낼 수 있었다. 각 두 수 가운데 한 수씩을 약간 손질하여 가려 뽑았다.
두 작품 다 종장이 엉성하였고, 특히 『봄밤』은 율격조차 맞지 않았지만 비교적 깔끔한 상의 처리를 사서 선에 넣었다.
시란 바로 감동의 표현이어야 한다. 감동이란 느낌을 통하여 일어나게 되는 흥분된 정신인 것이다.
박이랑님의 『소고놀이』와 최중태님의 『도피안사』는 3연을 모두 싣기는 했으나 감정의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시적 감동이 미흡하다.
지난 주에도 지적했지만 시조의 묘미는 조수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단수로 표현이 가능한 것은 굳이 연작을 시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한 송이 꽃에서도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느낄 수 있으며 봄 하늘의 흐르는 구름에서 생명의 무상함을 감동하게도 되고, 길바닥에 반짝거리는 유리조각 하나에서도 뭐라 형언하기 힘든 존재의 신비성을 터득하고 봄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서 젊음의 상쾌한 즐거움과 고조된 율동감을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사물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일종의 흥분된 감점이나 심적 상태가 바로 시의 내용이 되고 모태가 되는 시 정신인 것이다. <전규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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