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문책" 발언 7시간 만에 … 사실상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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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끝낸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발언은 “문책”이었다.

 5일 오전 10시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일벌백계하겠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는 발언이 있은 지 7시간 만에 두 사람이 사의를 표명했다.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선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시신 발견 혼선과 관련해선 이성한 경찰청장이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형식은 사의 표명이었지만 내용은 경질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사람이 그만두기 전에 청와대와 당연히 상의를 했을 것이고 사실상 책임을 묻는 경질로 봐야 할 것”이라며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는 일을 더 이상 질질 끌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2기 내각을 본격 출범하는 시점에 맞춰 국정 운영의 악재를 털어내고 싶었다는 의미다.

 권 총장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전방 사단을 방문해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하는 등 평소와 마찬가지로 근무했었다. 그런 만큼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의를 표명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셈이다. 이 청장 또한 지난달 21일 유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게 알려진 뒤 보름이 지나서야 사표를 냈다는 점에서 경질의 성격이 짙다. 청와대 내에선 두 사람의 사퇴를 끝으로 더 이상의 수뇌부를 문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 지휘라인의 최고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은 만큼 국방부 장관이나 법무부 장관까지 문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냐”고 해석했다.

 실제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가 끝날 무렵 스스로 발언권을 얻어 박 대통령에게 윤 일병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한 장관은 또 “최선을 다해 군을 바꾸겠다”며 업무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적폐를 걷어내는 계기가 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앞서 “이제 대부분의 장·차관이 임명돼 2기 내각이 본격 가동됐는데 모두 심기일전해 새로운 각오와 열정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회복 ▶국가 혁신 ▶문화 융성을 2기 내각의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여권의 대승으로 끝난 7·30 재·보선과 관련해선 “저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께서 정부와 정치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셨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와 국민을 대신하는 정치권은 무엇보다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는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가 돼 달라는 것이 민의였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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