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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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 동안 학생들이 보여준 이성적인 교내시위에 박수를 보냈던 많은 시민들은 14일과 같이 시민생활이 마비되고 치안질서가 엉망이 된 가두시위는 자제해 줄 것을 바랐다.
하오2시45분쯤 「파고다」공원 앞에서는 1천여명의「데모」학생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인환씨(49·상업)가 한 학생과 노상토론을 벌였다. 시민1백5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씨는 『학생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시가지까지 몰려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했다. 김씨는 『가게문을 닫는다, 막벌이꾼이 하루 끼니를 때울 벌이가 안된다, 얼마나 딱한 사정이냐. 민주발전을 위한 학생운동의 방법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그 동안 학생들의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교내시위를 통해 학생들의 뜻을 충분히 알고 있다. 「데모」가 「데모」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학생은 『학생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가두시위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역 앞에서 「데모」대열에 막혀 차를 세운 한 「택시」운전사가 학생들을 향해 『꼭 거리로 나와야만 되느냐』고 불평했다.
그는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른다. 다만 오늘처럼 서울거리가 막혀버린다면 우리 운전사들은 하루 지입금조차 벌 수 없는 딱한 사정이 된다』고 했다. 시청앞 광장에서는 7순의 고로(古老)가 시위학생을 나무라는 모습도 보였다.
빗속에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사 박모씨(32)는 『이제 학생들의 의사표시는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들이 민주발전을 위해 주장하고 지적해야할 문제들이 많지만 이제 행동을 잠시 멈춘채 기다려보자』고 했다.
또 14일하오 중앙일보 편집국에는 많은 시민들이 전화로 학생「데모」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 학생들을 자제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호소했다.
전화로 57세의 시민이라고 밝힌 한 남자는 『나도 대학생을 자식으로 둔 서민이다. 14일밤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걸어가며 대학생들의 시위를 지켜보았으나 내 눈에는 20년 전의 무질서와 혼란, 바로 그것이었다. 구호는 모두 좋은 이야기이지만 학생들의 가두진출만은 삼가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상태가 계속돼 경제가 더 난국에 빠진다면 결국 서민들만 파해를 보니 신문이 학생을 자제시켜달라』고 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전서울 시내의 교통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시위지역이 강남·북, 동·곳곳인데다 학생들의 최종 집결지가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이어서 4대문 안은 물론 강변로등 외곽지대의 모든 도로가 각종 차량으로 뒤범벅이 됐다.
「데모」대가 지나치는 도로변의 상가는 투석전에 대비, 아예「셔터」를 내렸으며 하오6시 「데모」대가 광화문에 집결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 일대와 상가는 일찌감치 철시했다.
곳곳의 교통이 막히고 한번 묶이면 몇십분씩 옴쭉을 못하는 바람에 많은 「택시」들이 아예 영업을 포기, 일찍 들어가 퇴근길의 「택시」잡기가 어느 때보다 어려웠고 빈 「택시」마저 손님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샐러리맨」들이 서둘러 귀가해서인지 흥청대던 무교동 일대의 주점도 손님의 발길이 뜸해 개점휴업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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