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서 네모꼴로 변하는 과정 한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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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작가 수화 김환기 회고전이 11일까지 서울 통의동 진화랑(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작품은 63년부터 68년까지, 즉 그의 「뉴욕」시대 전반기이자 화풍의 변혁기에 속하는 무렵에 제작된 것들이다. 63년 「사웅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가 74년 작고할 때까지 「뉴욕」에 머물렀던 수화는 이 시기 네모꼴의 변주로 이어지는 일련의 추상작품을 발표했다. 달·매화·항아리 등을 「모티브」로 했던 구상 화풍을 버리고 화면 가득히 네모꼴로 메웠던 그의 갑작스런 변화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것으로 받아졌다.
이번 전시회의 특별한 의미는 그와 같은 작품세계의 변모의 과정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64년의 작품들이 풍경 가운데 몇 개의 네모꼴을 상징적으로 점점이 배치했다던지 긴 수평선으로 처리된 강의 표현들은 그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해 주는 듯하다.
이 무렵 작품들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기름물감을 거의 수묵에 가까울 리만큼 투명하고 엷게 바른다는 점이다. 겹겹이 두껍게 발랐던 도미 전의 방법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수묵화와 같은 분위기를 군다.
그가 뒤에 본래의 「캔버스」대신 광목 위에 즐겨 그렸던 것은 바로 번지는 운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신문·종이 위에 그려 「드라이」한 맛이 풍기는 작품도 몇 점 눈에 띈다. 주류를 이루는 색조는 청색과 회색. 아직 이 시기에는 「뉴욕」시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어디서 무엇이…』처럼 화면 가득히 네모꼴과 점으로 처리하는 작품은 보이지 않지만 수화는 무수하게 찍어나가는 점 하나 하나에 친구와 친지, 추억이 깃든 갖가지 이름을 붙여보았다고 말해 그의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작품에는 단순히 『작품 64-I』 『작품 2-I-68-Ⅱ』와 같은 제목만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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