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시해 선고내려진날의 군재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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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단죄에 서릿발이 섰다. 비극적인 「10·26」사건의 관련피고인들에 대한 판결문이 낭독되는동안 법정은 물을 끼얹은듯 숨을 죽였고 피고인도, 방청석도 판결문의 한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듯재판장의 목소리에 온 귀를 모았다.
「10·26」사건 55일만에, 공판시작 17일만에 10회공판으로 박대통령시해 피고사건 1심공판을 매듭지은 20일 공판정에 출두한 피고인들은 법정최고형을 선고받고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예상한듯 크게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방청석에서는 한순간 가족들의 울음이 터져나왔으며 법정은 정병들에 의해정리됐고 재판부의 퇴장에이어 피고인들이 퇴정하자 역사적 대비극을 심리했던 육본 보통군법회의 대법정은 언제 무슨일이 있었느냐는듯 텅비었다.
『김재규·김계원·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김태원피고인에게 각각 사형』
재판장 김영선중장을 비롯, 재판부 5명과 피고인·변호인·방청객이 모두 기립한 가운데 재판장은 피고인들에게 선고를내렸다.
이때 재판관석에서 마주보이는 법정 뒤쪽 벽에걸린 대형 원형 전기벽시계는 상오11시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고는 피고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뒤 각각선고한 것이 아니었고 모두 모아 선고했기 때문에 김재규피고인에 이어 피고인의 이름이 하나씩 늘어남에 따라 법정 분위기는차차 굳어져갔다.
당초 법정주변에선 사형선고가 3∼4명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검찰 구형대로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법정안은모두 의외라는 표정.
재판장은 이어 유석술피고인에게 징역3년(구형5년)을 선고한뒤 페정을선언, 곧 퇴정했다.
선고에 앞서 상오11시2분 개정되자마자 법무사황종태대령은 『검찰관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은 피고인들의 진술, 검찰관이 제시한 증거, 증인 진술등으로 그 증명이 충분하다』고 또박또박 판결이유를읽어 내러갔다.
이어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한말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최근의국제정세등을 들면서 『국민의단합된 힘과 영도력이 그어느때보다 필요할때 대통령을 시해한것은 반역죄로 다스릴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또 김재규피고인에 대해 『대통령과 동향이며 동기이며 신임과 총애를 한몸에 받아 요직을두루 거친 피고인이 총부리를 대통령에게겨누고 확인사살까지 자행했다는 것은 인간의 양심을 저버린것으로 일말의 동경도 살수 없다』고 검찰논고와같이 말했다.
사형선고가 내린뒤 김재규피고인은 보도진을 향해가벼운 미소를 보낸채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김피고인은 사진기자들의「플래시」가 연방 터지자 시종 미소를 띤채「포즈」를 잡아주었다.
김피고인은 이 사이 잠깐 고개틀 돌려 바로 뒤에 앉아있는 부하 박선호피고인에게 조용한 말투로위로했으며 박피고인은 앉은채로 괜찮다는듯 고개를꾸벅이며 인사했다.
김계원피고인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 영거주춤 선채 뒤쪽 가족들이 있는방청석을 들러보았다.
현역군인이기 때문에 이번 재판으로 끝나는 박흥주피고인은 자리에 꼼짝않고 앉아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박선호피고인도 변호인들에게 인사한뒤 그대로 앉아있었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상오11시19분 페정된 피고인 가족들은 말없이 고개를 떨군채 모두 법정밖으로 나갔으나 김재규피고인의 여동생 재선씨(45)등3자매는 방청석 맨 앞줄로나와 김피고인의 얼굴을마주보려 했으나 정병들이 제지, 뜻을 이루지못했다.
1∼2분동안서성거렸으나 얼굴을 보지못하자 김재규피고인의 여동생 단희씨(37)가 큰소리로 『오빠, 건강에 주의하요』라고말하자 김피고인은 고개를돌리지 않은채 『알았다. 돌아가거라』고 대답, 남매간의상봉은 이루어지지않았다.
김계원피고인의 변호인 이병용변호사는 『판결 결과에승복할수없다』고 말했다.
박선호피고인의 변호인강신옥변호사는 김재규·박선호피고인의 가족들을 위로한뒤 총총히 자리를 떠났다.
재선씨는 『선고가 예상대로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유성옥피고인의 부인 서명숙씨(26)는 눈시울을 적시며 『극형만은 면할줄 알았는데…』라며 의외라는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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