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살해 사건 발생부터 검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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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길 수영장 가던 河씨 실종

지난해 3월 6일 오전 5시35분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여대 법대 4학년 河모(22)씨는 우산을 쓰고 수영장이 있는 스포츠센터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스포츠센터로 가는 길은 왕복 8차로여서 통행량이 적은 새벽에는 자동차가 정차할 공간이 충분했다.

인적 드문 새벽길에서 납치범들은 河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아침 8시쯤 귀가하던 河씨가 돌아오지 않자 이튿날 아버지는 경찰에 딸의 실종을 신고했다.

그리고 딸이 아파트를 나선 직후 수상한 남자 두명이 따라가는 모습이 흐릿하게 찍힌 지하 주차장 입구 CCTV 필름을 입수해 경찰에 제출했다.

河씨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35평형으로 당시 시가 3억8천만원 정도. 납치범들은 河씨 집으로 전화를 걸지 않아 금품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납치사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 열흘 만에 공기총 맞은 시체로

河씨는 실종된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3월 16일 오전 9시쯤 팔당대교로 진입하는 검단산 자락에서 공기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됐다.

범인들은 지름 5㎜인 탄환을 사용했다. 눈썹 위에 대고 발사한 최초의 한두발이 치명상을 입혔을 것이 분명한데도 탄창에 들어있는 6발을 모두 쏘며 잔인하게 확인사살을 했다.

河씨는 심하게 반항한 듯 왼쪽 팔이 세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河씨는 친구와의 약속 등을 수첩에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수첩에는 명문대 법대를 다니거나 졸업한 남자들과의 만남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수첩에서 河씨가 이종사촌인 판사 A씨를 만나지도 않는데 A씨의 장모 尹모씨가 의심하고 있어 괴롭다는 대목이 자주 등장해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河씨의 어머니가 이 때문에 A씨의 집으로 찾아가 A씨의 부인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으며, 아버지는 지난해 A씨의 장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기소유예 처분과 접근 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았던 사실도 밝혀냈다.

*** 현직 판사 장모 '납치청부' 구속

이에 따라 경찰이 치정이 아닌 청부업자를 동원한 원한관계 납치 및 살인사건으로 보고 尹씨 주변인물 휴대전화 추적에 나섰다. 이처럼 수사망이 좁혀지자 지난해 4월 유력한 용의자 金모.尹모씨 등 2명은 홍콩과 베트남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金씨의 부탁을 받고 범행에 사용한 공기총을 구입.보관해준 崔모씨 등 2명과 河씨 납치에 가담한 4명을 찾아내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A판사 장모 尹씨가 납치 감금을 청부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지난해 8월 尹씨를 구속했으며,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지난 1월 30일 尹씨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 河씨가 고등학교 시절 A씨에게 과외수업을 받았다는 것이 전부일 뿐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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