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높은 대화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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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수준에서든 남북한당국이 무조건 직접 만나 대화를 갖자는 박정희대통령의 새로운 대북제의는 남북대화재개를 위한 우리측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표명으로 종래의 대화재개촉구보다 진보한 것이다. 우리측은 지금까지 기존대화 「채널」 인 조절위와 적십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일관성있게 주장해온 반면, 북측은 상대를 한정한 조건부대화를 고집하면서 남북대화보다는 오히려 대미대화에 주력해온것이 남북관계의 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대통령이 시간·장소는 물론 대화상대의 「수준」 까지 상관치 않는 무조건 직접대화를 제의한것은 남북문제를 대화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특히 제3자를 통하지 않는 당쟁자간의 대화로 해결코자 하는 우리측의 자세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화상대의 수준을 상관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기존대화 「채널」 인 조절위나 적십자회담은 물론 상대방이 원하고 필요하다면 남북당국의 각료급, 총리급회담에 옹할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나아가서는 경우에 따라 박대통령이 김일성과도 직접 만나 대화할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같은 포괄적이고도 신축성있는 제의를 북이 계속 거부할 경우 그것은 북의 폐쇄성과 대화기피층을 국제사회에 새삼 드러내는 결과가 될것이고 북이 이 제의를 다소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이 제의는 남북관계의 새 돌파구가 될 것이다.
또 오늘의 세계적인 흐름이 전쟁보다는 평화, 폐쇄보다는 개방, 불화보다는 화해가 대세인 것이 명백한 이상 남북대화에 관한 양측의 입장차이는 이번 제의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될것이다.
더우기 박대통령은 무조건 대화외에 의제에 관해서도 한계나 조건을 붙이지않았다.
양측은 지금까지 서로간에 많은 제의를 주고받았다. 우리측은 대화재개와 명절성묘단교류, 이산가족간의 편지왕래등의 제의를 했고 식량원조·관광자원공동이용등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제의를 했으며, 이에반해 북측은 「대민족회의」 나 「남북연방제」 따위의 정치적이고 비현실적인 제의를 주로 해왔다.
무슨 의제등 직접 대화로 애기해보자는 박대통령의 새 제의는 의제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쌍방의 차이를 개의치 않겠다는 포용성있는 자세를 보인것으로 북에 대해『무슨 말이든 할말이 있으면 만나 얘기하자, 뭣이든 듣고 논의해볼수있다』 는 뜻이다. 이것은 북의 비현실적 제의를 통렬히 반박, 일축하는것보다는 훨씬 높은 차원이다.
이처럼 박대통령의 이번 제의가 북에 대해 포용성을 보인것은 그동안 쌓아올린 국력과 80연대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풀이할수있다. 박대통령이 흔히 표현한 남북간의 「잘살기경쟁」국력배양경쟁은 80년대에가 더욱 우리측의 우위로 격차가 커질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북에 대해 더욱 능동적이고 유연성있는 제의를 할수있게 됐다는 뜻이다.
최근 미·중공의 수교, 인지·중동사태등 격변하는 국제정세에서 박대통령이 평화지향적인 방법으로 민족염원을 실현키위해 한 흠원높은 대화 「이니셔티브」를 취한것은 등소평의 방미· 일과 주한미군 철수계획 재조정등과도 관련 의의가 크다.<조남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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