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마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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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가짜 서화 얘기가 나온다.
촌뜨기 벼락부자나 벼락감투를 쓴 교양 없는 상스런 벼슬아치들이 가짜를 사 놓고 좋아한다는 비판이었다.
예부터 가짜는 흔했다. 추사의 생존 중에도 추사 가짜는 나돌았다. 그러나 요새는 완전히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나 할까.
최근에 구속된 3명의 고서화 위조범들은 지난 76년부터 2년여 동안에 2억원에 가까운 보상을 올렸다. 압수된 재고(?) 중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추사·단원·겸재·석파·청전·이당…. 몇천만원짜리가 수두룩했다.
위조범들의 밥은 주로 「복부인」들이었다고 한다. 증권에 몰리던 복부인들이 부동산 투기에 몰리고, 이게 부동산 투기 억제책에 걸리자 이번에는 고 미술품에 몰렸다. 이래서 미술품값이 지난봄부터 몇곱씩 껑충 뛰었다. 그래도 「아파트」 한채 값이 넘는 것들이 날개 돋치듯 팔렸다. 복부인들을 속이기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한다.
낙관만 버젓이 찍혀 있으면 아무도 의심치 앉았다니 말이다. 이래서 위조범들이 제일 신경을 쓰는 게 낙관이었다. 가짜의 공통점은 모두 어엿한 낙관이 들어 있다는데 있다. 흔히들 가짜 낙관은 동판으로 제작된다. 동판 인쇄의 장점은 원화의 섬세한 선이나 점까지도 정밀하게 복사할 수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위화에서 가장 완벽하게 재생되는 부분은 바로 낙관일 것이다. 이번 위화범들의 수법은 이보다 더 교묘했다.
그들은 아예 진짜 고인들을 찍기도 했다. 중국에서 들어온 옛 인재를 써서 만든 가짜 낙관도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흔한 해남 돌로, 대전의 가짜 인장 전문가들이 판 것들도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물론 정밀하게 살피면 인주 색깔이 다르다. 그러나 예부터 진짜에도 후 낙관이란 것도 있었다. 이래서 낙관만 있으면 일종의 보증서로 여겼는가 보다. 자신의 눈이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짜 상인들은 인사동 고 미술상 거리에서는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얼굴들이다. 그 동안 피해자도 상당했던 게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 말썽이 없던 것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도시 피해자쪽의 신고가 없으면 가짜 거래를 알 길이 없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되도록 소문이 새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약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해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위조상들은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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