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의 친필 추정…시 백1편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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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문학사에 찬연한 빛을 남긴 소월 김정식(1902∼1934)의 육필로 추정되는 시작품 1백1편이 무더기로 발굴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있다.
소월의 스승이었던 안서 김억에 따르면 소월에게는 이미 발표된 작품의 편수를 능가하는 상당수의 미발표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중 일부(시 47편·수필 3편·서간문 2편)가 작년 10월 월간『문학사상』에 의해 발굴되기도 했다. 이번에 계간『문예중앙』이 입수한 1백1편의 시작품은 장성중 교수(성신여사대·불문학)가 지난 10여년 동안 고문헌을 수집해 오던 중 발견된 것.
『문예중앙』은 이 원고가 소월의 것이 틀림없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미 확인된 소월의 필적과 이번 발표된 원고의 필적을 과학적으로 대조하는 한편 문단과 학계의 의견을 모았다. 우선 안서가 『여성』지에 발표한 소월의 육필원고 컷과 『문학사상』이 발굴한 동아일보 구성지국 독자대장의 필적과 함께 이번 발굴된 원고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실에 동일여부 감정을 의뢰한 결과 『95% 동일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이로써 이 원고가 소월의 것이라는 가능성은 확실해졌는데 문단과 학계의 검토과정에서 의외에도 그 1백1편 가운데 안서의 발표된 시 29편이 포함돼 있음이 밝혀졌다. 이 수수께끼 같은 문제가 제기됨으로써 서지학자 백순재씨, 국문학자 김윤식 김용직 김학동 교수, 문학평론가 구중서 임헌영씨 등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소월의 것이 확실하다』는 의견, 『소월의 것보다 안소의 것일 가능성이 더 많다』는 의견, 『소월도 안서도 아닌 제삼자의 원고일 것이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백순재씨는 시가 씌어진 노트나 원고지의 지질과 판형 등은 30년대에 제작된 것이 틀림없고 시의 발상이나 음률 등도 소월시와 유사하지만 시가 연대순으로 기재되지 않은 점, 퇴고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 소월의 육필원고로는 퇴고의 흔적이 너무 적다는 점. 그리고 레코드회사의 청을 받고 유행가 가사를 썼다는 점(시 원고 속에 포함)등이 의문으로 남아 소월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한편 김용직 교수는 소월의 것이 아닌 안서의 것이리라는 견해. 『동로방천』이라는 안서의 시가 두군데 실려있는데 뒤쪽의 것이 심하게 수정·가필된 흔적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소월이 스승의 작품을 마음대로 손질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또 빅터·레코드회사로부터 청을 받고 가사를 써준 것도 소월이 아닌 안서였다는 점, 무엇보다 작품의 형태와 내용이 41년 박영사 간 『안서시초』에 실린 작품과 비교된다는 점으로 미루어 안서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구중서씨는 과학적 근거를 중시하면서 이 원고 속에 포함된 안서의 시가 작품 끝에 명시된 날짜로 미루어 발표이전의 시임을 알 수 있고 따라서 발표되지 않은 스승의 시를 소월이 가지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또 소월은 대부분의 시에 삼음보 율격을 적용했는데 안서 시를 제외한 다른 시들이 모두 삼음보 띄어쓰기로 기재돼 있다는 점을 들어 소월시가 틀림없을 것으로 보았다.
만약 이번 발표된 원고가 소월의 것이 틀림없을 경우 여기 함께 포함된 안서의 시 29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올 수 있다. 이 원고의 발굴·소장자인 장성중 교수는 그 29편까지도 소월의 시로 보아 충격을 던졌다.
즉 스승인 안서가 제자의 시를 자기 작품으로 발표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 그런가 하면 구중서씨의 주장대로 스승의 작품을 자기 작품 속에 정서해 놓을 수도 있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두 사람의 합작일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소월의 것이든 안서의 것이든 이 원고의 발굴은 커다란 의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윤식 교수도 『만약 소월의 시로 확인된다면 세계적인 발견』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 여부를 판가름해낼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문단과 학계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문예중앙』은 봄호에 안서시를 제외한 72편 가운데 50편을 추려 게재하는 한편 장성중 김용직 구중서씨의 이에 대한 소론을 곁들였다.

<봄의 맘>
바람이 붑니다, 파랑봄철을 휘붑니다. 하늘하늘 입사귀와 춤을 춥니다,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붑니다, 파랑봄철을 휘붑니다, 해롱해롱 꽃송이와 입 마춥니다, 입마춥니다.
바람이 붑니다, 파랑봄철을 휘붑니다. 한들한들 어데론지 ?나갑니다, ?나갑니다.
바람이 붑니다, 새봄을 도는 이 바람은 그대 잃은 이 내 맘의 넉돌이외다, 넉돌이외다.
1933.4 .8.―
주=원고노트 속에 들어있는 시 『봄의 맘』. 시의 앞에 빅터·레코드의 청탁에 의한 것임이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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