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곡예 같은 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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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년전 결혼을 하고 2남을 둔 김명로·이상혜 부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1동)는 아직도 신혼 초에 마련한 단칸방을 못 벗어나고 있다. 유난히 절약을 부르짖어 『노랭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는 이씨지만 「라이터」·만년필 행상으로 김씨가 들여오는 4만∼5만원 수입으로는 주식비와 교육비를 대기도 벅찬 생활이다.
생각다못해 2년 전부터는 동네 집안 일을 봐주며 돈을 조금씩 모아왔지만 방을 옮길만한 돈이 모이면 전세금이 또 올라 이렇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서민들이 절약하고 노력하는 반 점도의 보람을 얻을 수 있는 만큼만 물가가 올라도 이렇게 허덕이지는 않을텐데….』 이 한마디로 오늘의 서민 가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집을 마련할 꿈은 아예 포기하고 교육이나 잘시켜 아이들의 앞길이나마 터주는 것이 김씨 부부의 소원이란다.
『어떻게 살림을 해왔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요.』10년 「샐러리맨」의 아내 김정숙씨(37)는 적자로만 메워온 가계부를 보며 신기해했다. 월급 봉투를 가져오는 남편도 직장에서 바빴겠지만 얄팍한 봉투로 가계를 꾸려가기에 주부는 더 바쁜 생활을 보내야한다. 『가정이 보금자리라는 의미가 이 월급 봉투에서 산산조각이 날 때가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김씨는 결혼 다음해부터 부업으로 봉제품을 만들어 가계를 도와왔다. 남편이 충실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반듯한 집 한칸 마련한 것으로 김씨는 만족해한다.
서울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보조 미장공 일을 하는 전상보씨 (50·서울 도봉구 번동73) 집은 부인 박옥순씨 (48)와 3남 1녀의 6인 가족.
가장인 전씨와 장남(21) 장녀(16) 3식구가 버는 돈이 평균 6만7천원.
주식비·연료비·교육비를 빼고 나면 한달에 생선 한번 먹기 힘든 빠듯한 가계지만 『빚을 지지 않고 사는 것만도 큰 다행』이라고. 그러나 가장인 전씨가 10년 전부터 위장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병원 한번 갈 수 없다니 한집을 이끌어갈 원동력인 가장의 건강을 무시하고 사는 생활을 정말 다행한 생활이라고 해야 할지. 줄이고 줄여보아야 먹는 것만 겨우 해결하고 더 줄일 수도 없는 것이 서민 가계의 문젯점이다.
가정의 장래나 가정의 분위기를 위한 참다운 의미의 가계를 꾸려갈 수 없는 것이다.
홍순경(59)·구오갑 부부(54·서울 성북구 월계동15통)는 7년전 강원도 산골에서 7남매를 이끌고 상경했다. 손바닥만한 땅을 팔아 마련한 20만원짜리 집과 「리어카」가 이 집9식구의 전 재산.
새벽 6시에 일어나 청량리에서 배추·무우 등을 싣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얻는 수입이 6백∼7백원, 국민학생부터 21세까지 7남매의 생활비 대기도 벅차 모두 국민학교까지만 졸업시켰다.
밑의 두 아이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학교만이라도 마치게 하려고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이 일을 하고있다』는 것.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 얼굴을 대할 사이도 없이 잠에 곯아떨어진다는 홍씨 부부. 장성한 아이들이 집에 재미를 못 붙이고 밖으로만 돌아 다니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원망스럽단다. 가족간의 물적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정신적으로나 그런 불만을 해소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그릴 겨를조차 없는 데에 오늘의 가정이 헤쳐나가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재숙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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