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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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누구에게나 세월의 흐름을 스스로 회상하는 일이 해마다 적어도 두번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생일, 또 다른 하나는 제야.
그 중에서도 제야는 가장 장엄하고 감명깊은 날이다. 이 순간만은 세계 만백성의 공통된 생일처럼 저마다 감회가 깊다. 제야의 종소리가 이 세상의 모든 음수중에서도 가장 많은 마음의 공명을 자아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모든 방질들이 묵은해와 새해 첫 새벽이 교차하는 자정에 서울종로 보신각의 종소리를 중계한다. 서른세번의 기소리가 올릴 때면 사람들은 저마다 미련과 서글픔속에서 혹은 소망과 기대속에서 이 순간을 보낸다.
제야의 종소리가 서른세번 울리는 것은 불자은상에서 우러나온 의식이다. 삼십삼천에 장엄한 종소리를 올려 이 우주만상의 모든 번뇌를 끊어버린다는 뜻이다.
서양에선 교회의 종이 울린다. 영국의 유명한 수필가 「찰즈· 램」은 그 소리를『천국에 가강 가까운 음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교회에서 올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꼭 몇번 울려야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따로 없다. 시간으론 1분 혹은 3분간 울리기도 한다. 때로는 새해의 삭자를 따르는 경우도 있다. 1977년을 맞는 제야엔 77번의 경을 울리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는 해」를 애석해하기보다는「오는 해」에 더 많은 마음의 설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세모가 공연히 어수선하고 수런거리는 것은 그런 설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엔 새롭고 낡은 것이 따로 없다. 끊임없이 낡은 시간인가 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시간이 다가온다. 이런 흐름속에서는 또한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거듭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찰즈·램」은 그의 제야송에서 한해가 교차하는 순간엔 『임금이나 구두 깁는 사람까지도 그대로 소홀히 지나쳐 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운 밤,이 한밤이 모질기도 하는가. 희부연 조이동불 수집은 걸음걸이, 샘물 정히 떠붓는 안쓰러운 마음결. 한해라 기리운 정을 묻고 쌓아 흰그릇에 그대는 이밤이나 비사이다.』
우리의 시인 영낭의「제야」는 더없이 청결하고 소박하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마음속의 삼십삼천에도 저마다 제야의 종 울려 허물과 주름살을 펴야겠다. 그리고 새해의 눈부신 햇살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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