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편의 위주의 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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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정의 잘잘못은 결국 국민의 편의가 얼마나 도모되느냐에 따라 가릴 수밖에 없다. 행정 처리가 신속하고 비용이 적게 들어 행정 관서와의 관계에서 국민이 편하면 훌륭한 행정이다. 반대로 비능률과 부정부패로 국민이 불편을 겪고 행정 관서를 과도하게 의식하게 되면 그것은 졸렬한 행정이다.
따라서 행정의 개선 방안이 논의될 경우, 그 방안의 합리성을 가리는 기준으로 행정의 비능률과 부정부패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느냐가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내무부가 내년도 지방행정의 기본 방향을 주민 생활 편의 위주에 두기로 한 것은 옳은 일이지만, 문제는 주민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렸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은 시정 방향은 한낱 「슬로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주민 생활 편의 위주의 행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반적인 서정쇄신 노력을 계속하는 것과 함께 공무원의 증원을 통해 일선 행정력을 강화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중 서정쇄신의 실천이 국민 편의 위주 행정의 기본 조건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공직을 사리의 도구로 생각하는 관료 풍토 하에선 국민의 편의가 결코 관료의 편의에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정부패의 억제는 국민과 편의를 도모하는 첫 걸음이다.
지난 2년간 정부의 꾸준한 서정쇄신 노력으로 우리의 관계 풍토는 적지 아니 쇄신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선 창구의 눈에 띄는 부조리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정쇄신 성과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는 듯은 아니다. 아직도 은밀히 이해가 결탁된 부조리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공론이다. 서정쇄신 노력이 더욱 심화되어야 할 이유라 하겠다.
서정쇄신 노력에 비해 일선 행정력의 강화란 측면은 주민 편의 위주의 행정과 직결되는 요인은 아닌 것 같다.
공무원의 손이 너무 달려 민원을 신속히 처리할 수 없을 때 공무원의 증원은 행정의 격무를 해소하여 일 처리를 신속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인과관계는 행정에 비능률과 부정부패가 없다는 전제 아래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행정에 비능률과 부정부패가 남아있는 한 공무원을 증원했다 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국민에게 부담과 번거로움을 더할 수도 있다.
때문에 새로운 행정력이 생겼을 때라도 그를 담당할 새로운 인력의 증원이나 행정력의 강화를 생각하기에 앞서 기존 행정 영역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자체 소화하는 자세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설혹 일선 행정의 업무가 과중해 공무원의 수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중앙 부처의 인원을 억제하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노력 없이 계속 행정 영역이 방만해지다간 자연히 행정의 부작용 소지도 커지게 마련이다.
내년에 지방 공무원의 정원을 7백39명 늘리게 된 사유는 충분히 납득된다. 영세민 의료 보호 제도의 실시, 소방서의 증설, 지방 문화재의 철저한 보호 관리 등은 모두 시급한 일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벌써 50만명이 다된 현재의 공무원 정원을 더 늘리지 않고서는 과연 자체 조정의 방법이 전혀 없었느냐 하는 점이다. 국민의 편의 위주 행정은 관료 기구의 자체 억제와 서정쇄신의 풍토에서만 꽃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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