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한 서울의 교통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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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도 서울의 교통혼잡과 불편을 「교통난」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젠 아무래도 부적당하다. 「교통지옥」·「교통전쟁」이라고 말해야만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엔 도심지·변두리 할 것 없이 「버스」정류장마다 1백 명, 때로는 2, 3백 명씩의 시민·학생들이 뒤엉켜 만원「버스」를 타려고 아귀다툼이다.
이미 시발점과 그 가까이에서부터 만원을 이룬 「버스」는 중간지점엔 아예 서질 않고 질주해 버리기 일쑤다.
정류장에서 5분, 10분, 심할 땐 20분쯤 기다리던 끝에 초만원 「버스」를 다행히 타게 돼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안엔 제대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다. 밀고 밀치며 발을 밟거나 아니면 밟혀야하고 사람 틈에 꼭 낀 옷자락을 빼내자면 옷깃이 터지고 단추 한 두개 떨어지는 것도 보통이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면 홍수 같은 자동차의 행렬 때문에 벌서듯 서 있어야 하고, 건널 때도 「일단 멈춤」을 무시한 채 달려드는 흉기 같은 자동차 때문에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쫓기듯 건너야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이토록 서울의 교통체계와 교통질서가 엉망으로 되고 말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 가장 큰 이유는 교통·운수행정의 난맥과 무정견에 있다. 제 시간에 차를 못타는 시민이 하루에 2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나와있는데도 대중교통수단인 「버스」 증차를 TO가 없다는 이유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승용차는 증가일로에 있으니 그런 태도로 어찌 교통혼잡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서울시민의 73%를 실어 나르는 「버스」가 도로의 14%밖에 차지하지 않는데 반해 수송부담 15%에 불과한 승용차가 자그마치 도로면적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불합리를 왜 시정하려하지 않는가.
현재 9만 2천대의 자동차로도 이렇게 비좁고, 20만 명이나 되는 시민이 제때에 차를 못타는 판에 「버스」는 증차 않고 승용차만 증차를 허용해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이 같은 교통체증 현상에 한층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분별없고 계획 없는 도로굴착 작업이다. 한꺼번에 40여 곳을 파헤쳐 「버스」노선을 변경, 차량통행량을 무시한 채 진행로를 주먹구구식으로 몰아놓았으니 「러쉬·아워」엔 교통망이 거의 마비될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행정당국자의 무감각이 그저 한심스럽기만 하다.
이는 곧 인위적으로 수많은 「보틀·네크」를 만들어 교통지옥을 빚게 한 셈인데 이런 교통행정 자세부터 일대 혁신이 있어야하겠다.
수도교통행정이 크게 개선되려면 우선 행정의 기본 목표가 명확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그 목표는 대중교통수단에 의존하는 일반시민의 이익 위주로 모든 교통정책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가장 초보적인 원칙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까닭은 많은 시민들이 서울시의 운수행정에 대해 너무도 오랜 불신감을 표명해 왔는데도 조금도 개선의 빛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간의 수많은 증·배차 과정이나 노선조정, 심지어는 정류장 간격조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업체의 영향력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운수당국으로서는 시민의 이 같은 뿌리깊은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떤 시책도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시외「버스」 종합「터미널」문제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수도교통행정의 무력과 원칙 없음을 너무도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지 아니한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서울시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오로지 한길뿐이다. 주로 대중교통수단에만 매달리는 시민의 편의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실증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한두 가지 전시적 조치만으로써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운수업계나 자동차업계 등 관련업자들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계속 될 것이다.
때문에 수도교통을 어지럽히는 갖가지 요인들에 자신을 갖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광범하고 긴밀한 협조체제 위에서 공동노력을 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관계부처는 물론 이용시민·여론 등 산재한 갖가지 지원「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집약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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