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30분 "안심시켜라" 방송 지시 뒤, 선장은 탈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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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을 두고 먼저 빠져나온 게 사실입니까.”

 “….”

 17일 목포해양경찰서에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나온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는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경위에 대해 입을 닫았다. 탑승자와 선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 선장은 이번 사고의 피해를 키운 주범이다.

 16일 오전 8시40분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기 시작했지만 선장은 선원들에게 바로 승객들의 안전조치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선내 안내방송을 담당한 강혜성(32)씨는 “선실에서 8시55분 제주해상관제센터에 정식으로 구조신호를 보낸 것을 확인한 뒤 9시쯤 안내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피커를 통해 “안심하세요. 움직이지 말고 방 안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배는 한쪽 방향으로 계속 쏠렸다. 강씨가 있던 안내데스크 사무실도 완전히 뒤집어졌다. 배가 완전히 기울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이 선장의 추가 지시는 없었다. 강씨는 “오전 9시30분쯤 선실에서 안내데스크로 ‘승객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하라’는 내용이 전달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후 30분간 “방 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똑같은 방송이 일곱 차례나 되풀이됐다. 오전 10시쯤 배 안에 물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제야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을 했다. 15분 뒤엔 “침몰이 임박했으니 탑승객은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고 했다. 사고 발생 1시간30분이 지난 뒤였다.

 구조를 총지휘해야 할 선장 이씨는 이미 배를 빠져나갔다. 목포해경에 따르면 선장을 비롯해 항해사, 조타수, 갑판장, 기관장 등은 오전 9시30분쯤 대부분 배 밖으로 빠져 나와 9시50분쯤 해경 경비정에 구조됐다.

 선장은 “승객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하라”는 말을 안내데스크에 전달한 직후 탈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 안에 남아 있던 승무원들도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몰려 있던 선실엔 조끼를 나눠주는 승무원도 없었다.세월호의 구명보트 46개 중 단 한 개만 띄워졌다. 끝까지 남아 구조를 도왔던 승무원들은 배에서 나오지 못했다. 세월호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사는 탑승객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측은 16일 사고 직후부터 이날까지 탑승인원 수를 세 차례나 번복했다. 청해진해운 김영붕 상무는 “승선권을 발권한 인원을 기준으로 발표했다가 착오가 있어 다시 계산했다 ”고 해명했다.

 청해진해운은 최근에도 안전 불감증을 드러낸 적이 있다. 소속 데모크라시호가 지난달 28일 오전 인천항을 떠나 백령도로 향하던 조업 중인 어선과 충돌한 사고를 냈다. 이때도 선장과 선원들은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도록 사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 당시 탑승객이었던 조모(31)씨는 “‘어선과 충돌해 정차 중이니 앉아서 대기해달라’는 방송만 나왔을 뿐 구명조끼 착용이나 대피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조씨가 직접 해경에 신고를 했다.

인천=윤호진·이서준 기자, 진도=채승기 기자
[뉴시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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