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문제의 근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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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 재수생문제가 드디어 대통령에 의해 당면 중요국가시책의 하나로 지적되기에 이르렀다. 27일 문교부를 연두순시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재수생대책을 연내에 연구토록 하라는 지시는 이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함축 때문에 앞으로 적지 않은 진통을 예고하는 것이다.
최근 수년내 날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재수생문제는 근본적으로는 그 뿌리가 한국국민의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제도 전반의 모순에서 연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고려와 여간한 결단이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기술이나 노동을 천시하는 유교문화적 전통에서 아직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민들은 여전히 그 자녀들의 유일한 사회상승의 길이 대학, 그 중에도 특히 법·경·정 등 인문사회계통대학의 졸업장을 획득하는데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는 직장이나 사회의 수용자측에서도 각자의 능력이나 기능보다는 우선 학력부터 요구하는데서 빚어진 누적된 사회적병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물론, 오늘날 움직일 수 없는 세계대세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고등교육의 대중화 현상이라든지,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발전추세에 있는 개발도상국가의 고급인력수요에 비춰본 우리나라 고등교육인구정책의 근시안적 태도 등이 재수생의 양산과 그로 인한 필요 이상 심각한 사회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소질이나 재정능력과는 관계없이 논 팔고 소 팔아서라도 꼭 대학에만 진학해야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위신조차 갖출 수 없는 부실한 시설로 대학생 개개인과 그 가정 및 국가사회전체의 시간과 재정의 낭비를 강요하는, 이른바 우골탑식 대학상의 사회적 배양토를 어떻게 하면 정화하는가에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현실적인 문제로 올해 대입예비고사에 응시한 재수생만도 7만6천여 명으로 전체 응시자의 30%를 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수는 매년 증가되어 77년도에는 대입낙방생이 20만명, 재수생이 1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리하여 올해 만해도 약19만명으로 추정되는 재수생들이 내년 신학기까지 거의 무위하게 소모하게 될 학비만도 매월 30억원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국가가 재수생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이 급하다고 해서 신중한 검토 없이 시한에 쫓기는 식의 시책남발은 삼가야 할 것 같다.
문교부는 지난 30여년 동안 교육제도의 여러 면에서 수없이 개폐를 일삼았으며 늘 시행착오를 범하는 우를 저질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번 재수생문제도 무턱대고 「재수연한 2년」이라고 못박는 것은 곤란할 것 같다.
행정권을 동원해서 강제적으로 간단히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은 늘 새로운 문제를 낳을 뿐이다. 우리의 대학인구는 전 국민에 대한 비율에 있어 0.7%(미국3.47%, 일본1.6%, 서독1.2%)이며, 적령인구에 대한 비율은 8%(미국 43%, 일본21%, 영국13%, 서독12%)로서 주요외국과 비해 현저하게 낮은 실정이기 때문에 국가경쟁력제고의 면에서도 폭을 넓힐 필요는 부인하지 못한다.
때문에 단기적인 안목에서 교육투자에 비해 교육효과가 적다고 해서 교육시설의 확대를 외면하는 문교시책은 찬동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대학인구의 무원칙적인 확대만이 문제해결의 길이 될 수는 없다. 대학인구정책의 중점을 기술·기능학과 위주의 확장방향으로 전환하는 한편, 「대학」이 아니라도 능히 실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기술교육기관을 대폭 확충하고 충실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학력사회의 병리를 조장하는 사회고용상의 여러 제약도 제도적으로 철저히 철폐되어야겠다.
이런 점에서는 초·중등교육과정의 적정한 시기에 각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엄밀히 검정하여 장차 대학진학자와 기능사회진출자를 미리부터 분리함으로써 각개인과 국가전체의 사회적 낭비를 막는 제도를 검토해 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어떻든 재수생문제는 우리교육의 가장 중요한 당면문제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그 해결방안은 충분한 연구를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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