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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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때 연기설까지 돌았던 한·일외상회담이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23일 서울에서 열렸다.
「미야자와」(궁택) 일본외상의 방한으로 실현된 이번 한·일간 고위협의가 최근 2년간 몇가지 불행한 사건으로 소원해졌던 한·일관계의 개선을 이룩하는 전기가 되리라 기대된다.
「미야자와」일본외상의 방한은 미·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일간 협의의 주의제가 될 한반도문제를 사전검토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일관계는 그 지리적 근접성 뿐만아니라 역사적인 연관 때문에도 흔히 일의대수, 또는 순치의 관계로 비유된다. 또한 근래에는 지정학적인 의미에서 한반도를 『일본의 심장을 겨눈 칠수』라고도 말한다.
역사적으로 양국은 서로 우호관계를 누려온 기간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로 긴장과 불행의 기간을 적지 아니 겪었다.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란 불행한 현대사는 한·일우호관계 정립에 있어 넘기어려운 감정의 여울을 남겨놓았다. 64년 당시의 국교정상화에 대한 격렬한 반대와 최근의 불행한 사건 해결과정에 나타난 어려움은 모두 이처럼 복잡한 국민감정의 여울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 국민감정을 도외시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국민감정에만 매어서는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란 불가능하다.
국내 일부층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쓴 한·일국교정상화는 이렇게 국민감정을 뛰어넘는데서 출발했다.
새 시대의 전개를 위해선 과거를 극복하는 용기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도차이나」공산화이후 한·일관계에선 일의대수적 인식이 부쩍 고조되고 있다.
「미야자와」일본외상은 최근 외신기자회견에서 『일의대수를 격한 한국의 평화와 안정은 일본의 「아시아」정책의 제1목표』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일본방위의 기본전략이 일본 본토·「오끼나와」·한반도를 일체로 보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일본조야의 일치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분쟁에 말려들지 않고 핵공격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서는 무방비와 중립외교를 주창하는 측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특히 「인도차이나」사태이후 한국의 방위가 일본의 안보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만은 틀림없다.
사실 한반도가 적화된 뒤에도 일본이 지금과 같은 체제와 번영을 유지하리라고 보긴 어렵다.
일본의 일부 식자중에선 그 경우 핵무장을 포함한 재군비를 통해 군국주의화의 길을 걸으려는 우익과 재군비에 반대하고 친공느선을 내세울 좌익간에 내란이 일어날 것을 걱정하기까지 하고있는터다.
우리로서도 한·일간의 협력관계의 긴요성은 최근 안보적차원에서 증대되었다.
그런점에서 이번 한·일외상회담에 쏠리는 우리의 관심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던 것이 세칭 김대중씨사건에 관계된 정치적 결착문제로 인해 한때나마 일본외상의 방한이 연기되느니 하는 잡음이 일어 한·일관계의 저변에 깔린 감정의 여울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 문제가 최후순간에 원만히 타결된 것은 한·일관계의 앞날을 위해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양국국민의 지대한 관심이 쏠렸던 문제가 납득할만하게 해결되는 일은 국민감정의 순화를 위해 중요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상황하에서 양국의 우호협력관계 모색에 장애가 될 정도로 지난일에 집착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못된다.
앞으로의 한·일협력관계는 과거의 청산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란 장래를 향해 그 좌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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