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안철수 정치의 호랑이 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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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대기자

안철수 정치는 좌절했다. 신당 창당을 포기했다. 창당은 정치의 종합 예술이다. 인물과 돈, 정책이 그 구성요소다. 리더십은 그것을 결합해 정당을 만든다.  

 포기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안 모이고 돈은 돌지 않고 떨어지는 지지율 때문이다.”(류근찬 전 의원)-. 그는 새정치연합 창당 발기인이다. 그는 안 의원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국회의원 5명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의원 다섯은 정치 최소 생계비의 조건이다. 소수 자유선진당 시절 그의 살림살이 경험이다. 국고보조금은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에 크게 돌아간다. 5~19석 정당은 뭉칫돈을 똑같이(5%씩) 나눠 갖는다. 그것으로 최소 운영비를 마련한다.

 다섯의 숫자는 벅찼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지 않았다. 창당 작업 출발 때 (안철수·송호창 의원)그대로다. 2명의 국고 보조금은 연간 5200만원 수준. 창당 예상자금만 20억~30억원이다. 사람과 돈 모으기, 지지율은 얽혀 돌아간다. 류 전 의원은 “자금을 안 의원에게 의존하기엔 법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안 의원 재산은 1831억원(주식 1711억+예금 78억원 등)이다. 안 의원은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조합의 언어는 실현되지 못했다

 안철수 정치는 새 출발 했다. 그는 “새 정치를 담을 더 큰 그릇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통합신당 창당 취지다. 그는 결단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한다. 큰 그릇은 무엇인가. 송호창 의원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심정”이라고 했다. 호랑이 굴의 이미지가 안철수 선택과 어울릴까.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떠오른다. YS의 전략은 이분법 투쟁이다. 선한 약자 대 악한 강자의 대결이다. 그 프레임은 여론의 동정심을 동원한다. 리더십의 의지가 뒷받침되면 필승구도다. 그는 내각제 각서 위기를 반전시켰다. 내각제는 합당 조건이다. YS는 배수진의 비장함을 드러냈다. 정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다수의 민정계는 서서히 무너졌다. YS는 대선 후보가 됐다. 그는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았다.

 정치는 의지의 게임이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다. 안 의원은 통합신당에서 이분법 전략을 짤 것이다. 민주당 출신 대 새 정치의 안철수 구도다. 문제는 근성과 전략이다. 안철수 정치의 징크스가 생겼다. 단념과 포기다. 서울시장 후보 단념, 대선 후보 철회. 당 만들기 중단은 세 번째 포기다.

 책사 윤여준은 지난 1월 “안철수가 집요하고 강해졌다”고 했다. 윤여준은 창당 작업의 주역이었다. 그는 “야권 연대는 없다. 피투성이가 돼서 싸울 수밖에 없다. 약속을 지키려다가 무참히 깨져도 국민이 다시 살려줄 것”이라고 했다. 그 발언은 안철수의 독자세력화 의지를 고취하는 듯했다. 노련한 책사는 오판했다. 안철수 정치는 모험과 도전을 피한다. 반사이익을 즐기는 데 익숙하다.

 안철수 정치는 측근 관리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창당 포기는 고독한 결단이다. 그런 뒤 결심의 비밀을 공유해야 한다. 그 배려는 충성 확보의 바탕이다. 추종세력은 탄탄해진다. 3당 합당 과정에서 YS는 그랬다. 안철수는 결심의 비밀을 감췄다. 윤여준과 다른 측근 김성식 전 의원에게 숨겼다. 그것은 두 사람의 예상되는 반발 때문일 것이다. 리더십은 측근부터 설득, 장악해야 한다.

 선거판의 질서는 선명해졌다. 6·4 지방선거는 양자대결로 간다. 합당의 최대 수혜는 민주당 측이다. 김한길 대표는 안철수와의 합작 이미지를 다지려 한다. 야권 재편의 경쟁은 시작됐다. 민주당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 손학규 전 대표가 있다. 잠룡들도 여러 명이다. 친노 세력은 투쟁력을 갖춘 프로다. 그들은 안철수 정치의 취약점을 간파했다. 안철수 정치의 밑천은 드러났다. 윤여준은 걱정한다. “사슴이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 안 의원은 순박하다”고 했다.

 안철수 정치의 명성은 회복될 수 있나. 야권 내에서 그의 세력은 미약하다. 차별화된 콘텐트가 무기다. 그것으로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여야 공동약속이다. 새누리당은 백지화했다. 공약 파기다. 안 의원은 약속 이행을 촉구한다. 새 정치는 거기서 머물러선 안 된다. 폐지의 부작용 때문이다. 다수 국민은 자기 동네 의원·구청장 후보가 누군지 모른다. 공천은 정보다. 후보 성향을 알린다. 공천 없는 선거는 로또 뽑기다. 안철수 정치는 폐지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으로 새 정치는 재충전된다.

 정치는 살아 숨쉰다. 한국 정치는 강렬한 드라마를 요구한다. 패배가 장엄하면 부활은 화려하다. 노무현 정치가 실감나는 사례다. 리더십은 용기와 의지다. 새 정치든, 헌 정치든 지도력의 핵심 덕목이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