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설 전에 준다더니 … AI 보상금 한 달째 무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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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암
사회부문 기자

전북 부안군 줄포면에서 오리 6500마리를 기르던 정영희(57)씨. 그는 지난달 22일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나와 기르던 오리를 살처분해 묻었다. 그 바람에 4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설 직전에 이뤄진 정부 발표였다. “설을 쇠어야 하는 농가를 생각해 설 전에 살처분 보상금 160억원을 풀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정씨가 받은 건 100만원뿐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인 지난달 29일 군청에서 계좌로 넣어준 돈이다. 그 뒤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군청을 찾아가 물어봐도 “언제 돈을 지급할 수 있을지 우리도 확실치 않다”는 답만 돌아왔다.

 정씨뿐이 아니다. 살처분을 한 상당수 농가가 비슷한 상황이다. 본지가 파악한 결과 설 전에 살처분을 한 충남북과 전남북의 농가 69곳 중 30여 곳이 아직까지 100만원만 받은 상태다. “설 전에 일단 보상을 해주겠다”는 정부 발표와는 거리가 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준비한 160억원 중 실제로 설 전에 풀린 것은 전체의 15%인 25억원뿐이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설명은 두 가지다. 우선은 바빠서다. 보상을 하려면 전문가가 피해액을 산정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이 살처분에 방역을 하느라 피해액을 파악할 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누구에게 줘야 할지 결정이 안 돼서”다. 기업의 위탁을 받아 닭과 오리를 기르는 경우다. 일단 기업에 보상을 하고 기업이 다시 농가에 돈을 주게 할지, 아니면 바로 농민에게 줄지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농가 쪽에서는 다른 말이 나온다. 일단 기업이 보상을 받는 쪽으로 2주쯤 전에 합의 완료해 지자체에 통보했는데 아직 보상금은 감감 무소식이라고 살처분을 한 농가들은 주장한다.

농민들은 특히 “일손이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축산 담당 공무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공무원도 있다는 것을 뻔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살처분 농민들의 속마음을 이제야 읽었음일까. 농식품부 김태융 방역총괄과장은 “축산뿐 아니라 다른 업무를 보는 공무원을 투입해 최대한 빨리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나 저제나 보상을 기다리던 농민들에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약속보다 반 박자 늦은 실천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권철암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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