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편향과 수입수요의 경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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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역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국제경제동향의 충격이 파급되는 효과가 클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기 때문에 무역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국내정책의 자율성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정책운영이 그만큼 구속되는 것은 정책이론으로 보아 분명하다.
그동안 우리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림으로써 국내 산업구조는 본질적으로 수출 편의적인 특성을 심화시켜온 터이다. 주요산업의 수출의존도는 선사61.4%, TV 52.7%, 생사 97%, 합판 63.6%등으로 내수보다도 수출을 위해서 시설이 확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출의 호조는 수입여력을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가득 외환을 내수산업용원자재수입에 전용시킬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수입원자재를 가공하여 국내소비를 충당시킨다는 각도에서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수입대체산업의 확장자체가 수입수요를 경직화시키는 현상을 심화시켜 왔음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부인할 수 없다. 원유는 1백%, 고철 79.1%, 소맥 91%, 생고무 1백%, 원목 82.9%, 원선 1백%, 철광석 63.2% 등 내수용 원자재의 높은 수입 의존성은 경제체질에 하나의 화석화경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구조가 높은 수출입의존도를 전제로 해서 화석처럼 굳어진 이 시점에서 우리경제가 국제경제의 변동에 따른 충격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받을 것임은 구차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미 체질화된 개방경제체질을 단시일 안에 개선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아무리 무역의존도를 줄이려고 해보아도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스태그플레이션」의 여파가 휩쓸고 있는 지금 높은 무역의존도와 경직적인 산업저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비록 큰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역의존도가 커서 당하는 우리의 고통을 무역의존도를 낮추어 완화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경제의 화석화현상을 인정한다면 적절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우리는 적어도 화석화된 경제체질을 전제로 해야할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산업구조개선을 통한 무역의존도의 인하와 지속적인 성장력의 확보라는 장기 과제, 그리고 높은 무역의존도와 국제적인「스태그플레이션」때문에 파생되는 국내불황과 국제수지 적자폭의 확대문제 등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이냐 하는 단기과제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혼동한다면 정책체계를 제대로 잡을 수도 없거니와 정책의 우선 순위에 혼동이 일어나 현실적이고도 실현 가능한 단기대책을 집약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산업구조개선을 단기대책과 혼동한다면 발등에 떨어진 불은 걱정하지 않고 강 건너 불을 걱정하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뤄야할 과제는 국제수지애로를 현재의 산업구조를 전제로 해서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이냐 하는 단기대책뿐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기업의 재고축적과 조단 휴폐업 등은 모두가 수출부진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수출부진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단기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경제가 불황 속에 있으니까 수출 촉진책은 효과가 없다거나, 부작용만 일으킨다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외환고갈이라는 파국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임을 직시해서, 모든 부작용을 각오하고서라도 수출을 다시 촉진시킬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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