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밸런타인, 안중근 그리고 성수대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성시윤
성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다. 그는 104년 전인 1910년 이날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 사실(史實)이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새삼 퍼지고 있다. 지난달 중국 하얼빈 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생긴 이후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일 게다. 경기도교육청도 밸런타인데이가 안 의사의 사형 선고일임을 알리는 광고를 최근 일간지에 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날이 각별한 날임을 광고를 보고서야 알았다.

 민망한 마음에 검색해 보니 밸런타인데이와 안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 겹친다는 것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졌다. 그런데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반성을 하게 된다. 지난해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은 안 의사에 대해 얼마나 서술하고 있을까. 교과서들을 살펴봤더니 단 한 문장에 그친 교과서가 다섯 종이나 됐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했다’는 기초적 사실 정도다. 학생 대다수가 2월 14일을 초콜릿 주고받는 날로만 알고 있는 데는 어른들 책임이 크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밸런타인데이=초콜릿 주는 날’이란 광고는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에서 처음 나왔다. 공교롭게도 고베는 2006년 취재차 방문해 본 도시다. 당시 강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1995년 고베 대지진 관련 흔적들이었다. ‘고베항 지진 기념 공원’엔 참사 당시 내려앉은 콘크리트 구조물, 기울어진 가로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대지진의 아픔과 극복을 기록한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에선 고가도로·건물 등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담은 당시 폐쇄회로TV(CCTV)를 방영하고 있었다.

 취재 중에 성수대교가 떠올라 마음이 씁쓸했었다. 자연재해인 고베 대지진과 달리 성수대교 참사는 인재였다. 평일 아침 다리가 무너져 내려 출근길 시민 32명이 희생됐다. 주범은 한국 사회의 부실한 시설물 관리였다. 희생자 대다수는 등교 중이던 무학여고 학생들이었다.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역사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성수대교 참사를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참사를 기리는 구조물은 높이 4.5m의 ‘희생자 위령비’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찾기 어려운 곳에, 가기 불편하게 세워 놓아서다. 위령비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강변북로 상에 놓여 있다. 주차장이 있긴 하나 수년째 입구를 대형 화분으로 가로막고 있다. 위령비 주차장에서 성인용품 판매 차량이 영업 중이란 방송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관할 구청에서 관리가 힘드니 아예 주차장을 막아버린 것일까.

 있는 그대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뼈아픈 역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부끄러운 과거라고 빠뜨려서도 안 된다. 일제 시대의 반인륜적 범죄를 뒤덮어 버리려는 일본 우익 인사들이 명심할 대목이다. 성수대교 참사를 먼 과거 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우리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성수대교 참사는 1994년 10월 21일 발생했다. 올해는 성수대교 참사 20주년이 되는 해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