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고시제하의 고교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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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고교연합고시제에 따라 학생을 배정 받은 일선 학교에서는 제각기 능력이 다른 학생들을 두고 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만만치 않은 난제를 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의 상향적인 평준화가 선행되지 않은 채 학생의 평준화를 먼저 단행한 데서 능력 차가 심한 이질적인 신입생들을 어떻게 학급 편성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기초 학습 능력 결함자의 지도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추첨에 의한 중학 진학 제도의 실시 이후에도 크게 문제시되었고,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지적·도덕적인 차원에서 학생의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교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더군다나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입시제도 개혁에서 오는 당장의 혼란은 적지 않을 것이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교 평준화의 이념에 어느 정도 접근하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역사적 의의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등 교육 인구의 급격한 팽창이 종전과 같은 엘리트주의적 교육의 원리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 인구의 팽창과 교육 수요의 증대는 좋건 싫건 간에 교육의 민주화·다양화·다각화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질적인 학생 집단을 순수 배양하는 것과 같은 일류교, 이류교의 구별이나, 또는 우열반의 편성 등은 그 자체가 학교 밖의 사회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교육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 사회란 곧 다원적이고 이질적인 인간 집단의 상호관계에서 형성된다고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고교 입시제도가 가져온 학생 평준화의 문제는 일선 학교나 교사의 입장에서는 보다 전향적·창의적인 자세로 그것은 하나의 시대적 도전으로서 받아들이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입시 제도의 개혁에 교육 전반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것은 말하기는 쉬우나 교수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당장에 세칭 일류교에서는 지진 학생의 지도라는 어려운 문제가 안겨져 있고, 세칭 2, 3류교였던 학교에서는 반대로 뛰어나게 우수한 학생들의 지도가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평가도 또한 교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수 학생·지진 학생의 평가 과정에서부터 새로운 자세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학생들의 능력의 평가가 그의 현재적 수준에만 확집됨이 없이 학생 개개인의 잠재적 영역까지 확대됨이 아쉽다는 얘기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들의 이미 터득한 수준을 뒤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있다 함은 여러 말이 필요없다.
이른바 학력과 실력과의 분열이란 말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듯이 사회가 그 가치를 인정하는 능력이란 대학 입시 위주 교육에서 평가된 학력보다는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질적인 학생 집단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고교 교육에서 이 같은 다양한 능력을 개발해 가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교육이 이룩되기를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학교 평준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행정 지원이 있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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