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타개에 안간힘…하한기의 출판계|문고판에 한가닥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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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거듭돼 온 불황의 연속에서 다시 하한기를 맞은 출판계는 예년보다 더욱 심한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는 하한기에 접어든 지난 6월에 제일 많은 책이 발행된 이상현상을 빚어냈지만, 한정된 독자에 책만 많이 나옴으로써 오히려 불경기를 부채질한 것이 아닌가 풀이되고 있다.
호화판 전집물 등이 「올·스톱」상태에 들어간 7월의 각 출판사들은 여름철 불경기를 이겨내는 활로로서 문고판 출판에 한 가닥의 기대를 걸고 있다.
금년 봄부터 「붐」이 일기 시작한 문고판은 지난 6월까지는 물론 여름을 잊은 듯 7월에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고, 8월에도 발행계획이 세워져 있다.
문고판은 값이 싸고 휴대하기가 편하고 내용이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여름철 독서용으로는 안성마춤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각 출판사들은 이 문고판이 계절적인 바람을 타지 않고 하한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동화출판공사는 세계문학「시리즈」의 「동화문고」 50권을 한꺼번에 냈다. 작년에 완간한 『세계의 문학대전집』의 보급판으로 낸 것이며, 또 가을에는 사회 과학류와 국내문학「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40권을 낸 서문당의 「서문문고」는 8월 중순까지 10권이 더 나오고 연말까지는 1백권을 채울 계획. 63년부터 68년까지 50권의 문고를 내고 중단됐던 탐구당의 「탐구신서」는 지난 6월 새로 5권을 냄으로써 계획이 이어졌다.
현암사의 「현암교양신서」는 지금까지 12권이 나왔고, 다시 2권을 8월중에 계획하고 있으며 삼성출판사는 한국문학전집을 엮은 「삼성문고」 41권을 이달 중에 내고 가을까지 82권을 낼 계획이다.
또 삼중당은 한국대표문학전집의 보급만 45권을 냈고, 90권까지 나온 을유문화사의 「을유문고」는 여름철엔 계획이 없고 9월중에 다시 10권이 나온다.
회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삼성문화재단의 「삼성문화문고」는 현재 9권까지 나와 있고 다음주에도 한 권이 나온다.
이와 같이 각 출판사들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문고출판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에 비해서는 일반 독자들의 호응이 따라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의 독서습관이 베어 있지 않은데다 문고를 아직 책으로 여겨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태까지의 출판인들이 국민에게 독서습관을 길러 주기보다는 호화판 전집물에만 열을 쏟아 온데 책임이 있다 할 수 있다.
책을 사서 읽는 습성이 붙어 있지 않운 우리나라에서의 독서운동은 장서판의 보급에 앞서 누구나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문고판의 보급이 시급한 것이다.
몇 해 전부터의 전집물 「붐」으로 책은 필요 이상으로 대형화했고, 내용보다는 겉모양에만 돈을 들여 정작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출판계의 자체반성과 불황타개의 모색으로 지난 봄부터 나온 문고발행은 크게 환영할 만한 것이다.
최근의 문고판들은 1∼2권씩 내는 곳도 있지만 차츰 대형화해서 한꺼번에 20∼50권씩을 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형화 한 문고판은 월부 외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호화판 전집물을 값싸게 축소한데 그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출판사 측으로 볼 때 문고발간은 큰 책과 마찬가지로 손실이 가지만, 서점을 통한 낱권판매가 잘 되지 않고 외판원도 이익이 적어 보급에 별로 힘쓰지 않고 있으며 또 재고품의 관리 등 수지 면의 어려움이 많다.
값싸고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는 문고본은 특히 여름철의 독서용으로는 적격으로 해변이나 산 속의 피서지에서 틈틈이 꺼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피서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아직 현 단계에서는 문고보급이 잘 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문고발행이 해마다 계속되고, 또 국민독서운동이 병행될 때 앞으로 문고판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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