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 미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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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0여세기에 걸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화미한 환상이다.
묵의 종으로 뚜렷하게 윤곽 잡힌 갸름한 얼굴은 화사하면서도 정감이 흐르고 있다. 곱게 줄친 짙은 눈썹, 꿈꾸고 있는 듯한 긴 눈, 정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예쁘장한 코, 육감적이라 할만큼 알맞게 두툼하고 자그마한 입술이 살짝 벌릴 듯 말 듯하고 있다.
머리는 뒤로 묶어서 자연스럽게 머리카락 끝을 튀기듯이 들려 내려져 있다. 주홍색의 긴 웃조고리는 중간부에 허리띠를 얄밉도록 맵시 있게 둘리고, 「롱·스커트」와도 같은 푸른색의 치마는 잔주름을 잡아 발 밑까지 흘러내려 있다.
갸름한 목에서 어깨, 허리…로 곱게 흐르는 곡선은 여체의 신비로움을 은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시녀가 간이의자를 들고있다.
소풍 길에 나오는 길일까, 아니면 어느 귀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일까.
아직은 아무도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녀가 막연하게나마 7세기 때의 여인이라고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이름 모를 고분의 어둠 속에서 발견된지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그것도 두 나라의, 어쩌면 일본 나량의 고분총에서 발견된 벽화고분의 임자가 누구인지, 그 속에 주인과 함께 잠든 벽화의 네 미인이 누구인지는 대중잡지의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자들의 환상의 날개는 더욱 퍼져만 간다. 어쩌면 일본문화의 원류는 한국일지도 모른다고….
7세기는 「아시아」에서는 격동의 시대였다. 「도전과 대응」의 어지러운 세기였다. 일본과 수와 당, 고구려·신라·백제와 수·당, 그리고 또 일본, 이런 세 개의 노력권이 서로 얽혀가며 새로운 문화를 가꾸어 나가던 때였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잃은 고구려·백제의 유민들을 일본에서는 반겨했다. 그들의 뛰어난 문화를 부러워한 탓이었다.
이때의 일본문화의 중심은 「아스까」였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비조를 일본의 고향이라고 여겨왔다. 그런 한 복판에서 되살아난 미인도인 것이다.
『저 벽화고분의 출현은 자칫하면 폐소적인 것이 되기 쉬운 일본사라는 것을 단숨에 「아시아」적 규모로 펼쳐 놓아주었다』고 한 일본인 작가는 말했었다.
한 폭의 미인도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여러 가지의 화미한 환상의 날개를 엮어낸다. 그러나 그 미인들이 고대인의 미의 세계를 안고 되살아난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만은 환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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