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실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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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몇년전 이름난 제과 회사에서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사탕과 과자에다 「롱갈리트」를 섞어서 만든 것이 사직 당국에 적발되어 크게 사회 물의를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롱갈리트」라는 약품은 옷감의 표백을 하는데 쓰이는 「포르말린」을 함유한 독성이 강한 약품이며 식품의 표백에도 효과가 있는 표백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롱갈디트」가 유독하다는 것을 모르고 우리 나라의 고유한 과자인 「엿」을 탈색하는데 수십년 동안 이것을 사용해 왔고 이것이 통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이 유명 제과 회사의 기술자도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유독한 약품을 여러 해 동안 사용했고 과자에다 넣을 정도로는 당장에 급성 중독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회사에서나 엿장수들도 당연히 넣어야하는 것으로 알고 마치 원료의 일종으로 여겨왔다.
사직 당국에서 이 사실을 밝혀내게 된 경위는 시중의 과자를 검사해서 알게된 것이 아니고 이 독약을 대량 사용하는 것이 의아스러워서 추적조사 하였더니 모회사에서 과자에 사용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래서 그 현장을 급습하여 적발하러 왔던 장관을 보고 이 공장의 기술자는 극히 태연하게 이 약품을 전부 섞고 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에서 고의도 아니며 과실도 아닌 무과실로서 경범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만약에 기술자가 자기의 행위가 불법이며 간접적인 상해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형사들 앞에서 자진해서 「롱갈리트」를 과자 원료에 섞을 리는 없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현재의 법이 만약 고의와 과실에서 행해진 결과만을 벌한다면 사회 통념이나 무의식적으로 행한 행동의 결과가 고의나 과실에서 결과한 것보다 수십, 수백 배의 사회적 혼란을 가져다준다고 하더라도 묵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이제 우리들의 생활은 점차로 더욱 단조로워지고 분업화해 나가고 있다. 의식주를 모두 남의 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와 같이 생산자가 바로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운반·가공·저장·판매가 각기 전문화하고 그들의 논리에서 합리화 되고 있다.
극도로 분업화된 문화 사회에서는 통솔만이 가치 판단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계측할 수 없는 복지라든가 안전이라든가라는 따위의 말은 잠꼬대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인가.
한사람의 행위가 이 같이 많은 사람도 『내게 영향을 주는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따라서 무지나 무의식으로 비행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사회악의 동기가 무지였다고 해서 그것을 벌하지 않는다면 모든 비행은 무지에 귀착시키려고 할 것이 아닌가.
최근에 공해에 대해서 「무과실 책임제」라든가 「개연성」이라는 말이 법조계에서 판결의 근거가 된 예가 있다. 고의나 과실 또는 무의식을 불문하고 결과를 문책한다는 것이며 과학적 증거 제시가 없을지라도 결과를 가져다준 원인이 분명할 때에 그 동기 여하를 가리지 않고 문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의 당연한 논리가 아닌가 싶다.
권숙표 (연세대 의대 교수·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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