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대미관계 개선「신호」의 원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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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윌리엄·로저즈」 미 국무장관이 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북괴 측의 대미관계개선 신호에 따라 그 가능성을 암시한 것은 북괴에 대한 미국태도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이날 「로저즈」장관의 북괴에 관한 발언은 기자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나왔다.
질문은 『지금 북괴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이 있다는 하위급의 신호(signal)가 나오고 있는데 「닉슨」 대통령의 중공방문 이후의 새로운 국제정세로 보아 그런 가능성은 어떠한가?』라는 것이었다.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한 직접적 계기는 이날 아침 「워싱턴·포스트」지가 동경발신으로 그런 뜻의 신호를 크게 보도한데 있었던 것 같다.
질문을 받은 「로저즈」장관은 답변서두에 질문한 기자를 향해 『당신이 말하는 신호는 물론 정부이외의 소식통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북괴가 한국,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는 또 다른 암시도 있다』고 보충설명까지 했다.
그런 뒤 답변의 핵심에 들어가서 미국은 모든 나라와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다는 일반적인 희망을 표명하고 그 속에는 북괴도 포함될 것이라고 「로저즈」장관은 말했다.
물론 「로저즈」장관은 미국이 한국과 충분히 상의하고, 북괴의 속셈을 알기 전에는 단정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대외정책수립의 최고책임자의 한 사람인 국무장관이 이 정도로 적극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은 북괴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알리는 것 같다.
「로저즈」발언에 접한 이곳 관측자들은 그가 말한 『다른 암시도 있었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정부의 어느 한국전문가는 그것은 작년 7월 「닉슨」 방중발표 이후 북괴의 신문·방송의 논조를 종합해보면 그런 암시를 확인할 수 있다고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혹시 북괴가 북경을 통해 미국에 어떤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라는 가설을 세워 보는 사람도 있지만 확인할 방도는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1월21일자 일본의 독보신문의 김일성 회견기사가 국무성의 진지한 검토와 흥미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김일성의 회견에 이어 「워싱턴·포스트」지가 동경발신으로 대미관계개선에 관한 북괴측 신호로 보이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북괴가 대외적인 태도를 완화한 것이라고 간주할 경우 그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곳 「아메리컨」대학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그러한 변화의 뿌리를 「푸에블로」호, EC121기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고자했다.
그는 「푸에블로」, EC121사건 때 미국이 보인 자제가 김일성으로 하여금 태도를 완화케 하는 최초의 중요한 계기가 되고 그 뒤의 「닉슨·독트린」발표, 주한미군일부철수, 「닉슨」중공방문 같은 일련의 사태가 김일성에게 유리한 것으로 비쳐 그의 태도완화를 촉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괴의 의도에 대한 전기전문가의 개인적 결론은 김일성이 강경정책의 본질은 유지하되 유화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중공을 향한 자세로 보나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개인을 축소시킨다는 의미에서 보나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결국 「닉슨」행정부의 대 중공접근정책의 부작용이 한국에는 예상보다 빨리 오는 것 같다. 특히 이 발언이 북경방문 직후에 행해진 것은 미·중공 정상회담에서의 한국문제토의와 간접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예측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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