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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 잃고 있는 G20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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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사공일
본사고문·전 재무부 장관

며칠 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G20 정상회의는 재무장관회의와 셰르파회의 등 준비 과정을 거쳐 미리 정해진 주제에 따라 진행된다. 금번 회의에서도 거시경제·금융·무역·개발 등으로 나눠진 분야에 관한 정상 간 논의가 펼쳐질 것이며,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토론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박 대통령은 G20과 세계 경제를 위해 더욱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현재 실추돼 있는 G20의 위상을 바로 세워 G20을 국제 공조의 중심에 되돌리는 것이다.

 G20의 현황부터 한번 살펴보자. 2008년 9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기존의 G7만으로는 위기 대응에 역부족임을 느낀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주도해 첫 번째 G20 정상회의를 그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다시 만난 G20 정상들은 워싱턴회의에 이어 위기 극복을 위한 거시경제정책 공조와 함께 세계 금융체제 개선을 통한 미래 위기 예방과 대응에 관한 여러 가지 구체적 합의를 도출했다. 이에 만족한 G20 정상들은 같은 해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G20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G20을 국제 경제협력에 관한 프리미어 포럼(premier forum)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깊은 통합 단계에 들어선 현재 세계 경제는 주요국 간의 더욱 긴밀한 정책 공조를 필요로 한다. 반면 무극(no-polar)으로 불릴 정도로 다기화돼 있는 오늘날의 세계 경제 판도하에서의 국제 공조는 한층 더 어렵다. 이러한 때에 G20 정상들은 국제 경제협력의 핵심에 기존의 G7이 아닌 G20을 두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것은 글로벌 경제 관리체제(global economic governance framework)의 측면에서 볼 때 분명히 큰 진전이었다.

 그러나 G20은 2010년 서울회의를 고비로 그 동력이 계속 약화돼 왔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집단지도체제의 구조적 약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급한 불’을 끈 이후 약화된 ‘위기의식’이 정책 공조를 더욱 어렵게 한 측면도 있다. 또한 직접적 요인으로 G20 내에 적극적인 리더가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일부 주요 G20의 정상 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G20 체제의 출범 시부터 적극 관여했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G20과 국제 공조에 다소 소극적인 캐머런 총리와 올랑드 대통령으로 교체됐다. 실제 지난 6월 영국 주도하에 열렸던 G8(러시아 포함) 회의에서는 피츠버그 G20 합의가 무색할 정도로 경제 문제가 주로 다뤄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G20 정상도 이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 바 없다.

 물론 최근의 세계 경제·금융·환율 관련 제반 현안들은 주로 G7이 중심이 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도 비G7과 세계 경제 전체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피츠버그합의에 따라 G20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앞으로도 세계 경제는 반복해 크고 작은 경제·금융위기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G7만으로는 그 해결이 어려워 G20 모두의 긴밀한 공조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G20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 두고 있다. 피츠버그와 서울에서 합의한 프레임워크(Framework)와 상호협력 과정(Mutual Assessment Process)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관련 문제도 이 틀 안에서 다뤄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이러한 G20의 현실에 비춰 볼 때 국제 경제협력의 프리미어 포럼으로서 G20의 위상 재정립과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금번 정상회의에서 반드시 논의돼야 하며 박 대통령이 이 일에 앞장설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적어도 G20과 G7 간의 분업 및 공조체제 확립방안과 G20의 제도화 방안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정상 간 합의만이라도 이뤄져야 한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G20 내에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의견 조율에 유리한 입장과 중간 규모 나라의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주요 정상 간 충분한 의견 조율이 없었다면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이니셔티브가 금번 정상회의에서 모두 관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G20의 새 리더로서 박 대통령의 이런 역할은 정상 간의 공감대 형성과 필요한 후속조치 마련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모쪼록 박 대통령의 첫 번째 G20 데뷔가 성공적이기를 온 국민과 함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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