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야구 구단주, 진짜 야구선수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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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 유일의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의 허민(37·사진) 구단주가 미국 독립야구단 선수로 입단했다.

 고양원더스는 29일 “허 구단주가 미국 캔암리그의 락랜드 볼더스에 선수로 입단한다”며 “지난 8년 동안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밝혔다. 광적인 야구팬으로,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허 구단주는 야구단을 소유한 데 이어 직업 야구선수까지 됐다. 허 구단주는 “앞으로 더 높은 무대를 위한 도전을 계속 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절 지도해준 김성근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구단을 통해 소감을 전했다.

 2011년 말 고양원더스를 창단한 허 구단주는 초대 사령탑으로 ‘야구의 신(이른바 야신)’ 김성근(71)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상 둘은 고용주(구단주)와 피고용인(감독)이지만 허 구단주는 김 감독을 아버지처럼 모셨다. 그는 “난 김성근 감독님과 결혼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김 감독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표현해왔다. 김 감독에게 프로 감독 못지 않은 대우를 해주는 건 물론이고, 지난 겨울엔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해 화제를 모았다.

‘게임업계 청년 갑부’ 허민. 2011년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만든 그가 미국 독립야구단 락랜드 볼더스에 입단(위 사진)했다. 아래 사진은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오른쪽)과 악수하는 모습이다. [중앙포토·고양원더스제공]

 허 구단주의 지원과 김 감독의 지도 아래 고양원더스는 프로야구 퓨처스(2군)리그와의 경기에서 6할대 승률을 기록 중이다. 아울러 2년간 고양원더스 선수 11명이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허 구단주는 고양원더스에서 성장한 선수들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프로에 보내고 있다. 야구를 통해 사회공헌을 하겠다는 창단 취지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도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

 청소년 시절 부터 야구에 푹 빠졌던 허 구단주는 1995년 서울대 응용화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야구부에 가입했다.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도 늘 야구를 가까이했다. 졸업 후 온라인 게임업체 네오플을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고 2008년 넥슨코리아로부터 3000억원을 받고 네오플을 매각했다. 32세에 청년 재벌이 된 그는 미국으로 떠나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74)를 찾아가 피칭을 배웠다. 대학 시절 오른쪽 어깨를 다쳐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하는 그에겐 느리고 변칙적인 너클볼이 훌륭한 무기였다.

 미국에서 야구를 배우는 동안 버클리 음대에서 작곡 공부까지 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그의 열정이 몰린 곳은 단연 고양원더스다. 구단은 운영비·인건비로 매년 20억원을 넘게 쓰면서도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캔암리그는 미 마이너리그 싱글A 수준의 독립리그다. 고양원더스는 “허 구단주가 몇 달 전부터 미국에서 머물며 입단을 준비했다. 빠르면 이번 주말쯤 마운드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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