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통신] "美 공습 그믐밤을 조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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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을 조심하라. "

요즘 이라크 정부와 바그다드 외교가에서 떠도는 말이다. 전쟁은 그믐달이 뜨는 3월 초에 터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1991년 걸프전 때나 98년 공습 때나 미군은 늘 그믐밤 자정을 기해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것으로 전쟁을 개시했으며, 요즘 보여주는 행태도 다음달 초 개전을 전제로 한 양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바그다드의 한 서방 외교관은 "지난해 8월 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올린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귀띔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일차적으로 유엔에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되▶군사적으로 공습이 용이한 3월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골자로 현재 미국이 유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 수순을 정확히 밟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정부도 3월 초 개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 주말 집권당인 바트당의 최고위 간부 5백여명에 대해 출국금지령을 내려 사실상 '전시 비상령'을 선포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반전 움직임을 최대한 활용해 극적인 '막판 뒤집기'를 꾀하고 있다.

이라크의 뒤집기 카드에는 송영길(민주)의원 등 한국 국회의원 17명이 지난달 말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는 뉴스도 포함돼 있다.

장관급 기구인 '국제연대.평화.우호를 위한 국민협회'의 알리 카시미 위원장은 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회색 국가(Gray State)'로만 알려져온 한국이 국제 평화를 위해 나선 의미있는 행보"라며 "서명 의원 전원에게 이라크 국회 외교위원장 명의로 초청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서명 의원들이 와준다면 각료들은 물론 부통령까지 면담토록 국빈 대우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라크 정부는 ▶자국 석유의 80%까지 미국 메이저 회사들에 개방하거나▶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차남으로 이라크 권력서열 2위인 쿠사이가 친위 쿠데타 형식으로 대통령에 오르고 후세인은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으로 항복을 대신한다는 '빅딜 안(案)'을 미국에 비공식 제안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후세인의 자진 망명 등 '완전 항복'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현지 외교관들은 전한다.

한 교민은 "이라크가 겉으로는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걸프전 당시만 해도 8년간의 대 이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한번 붙어 볼 만하다'는 정서가 있었지만 결과는 도무지 상대가 안됐던 것을 후세인은 뼈저리게 체험했다"며 "전쟁을 피하려는 후세인의 몸부림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이라크를 구한 영웅이란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인물이 후세인인 만큼 빅딜이 실패하면 그는 차라리 장렬한 자멸을 택하리란 전망이다.

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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