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간호사, 13명 살해 혐의 부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법정은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여러 병원에서 어린이와 노인 등 환자 13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 간호사가 공판 첫날 이같은 혐의를 부인했다.

루시 드 버크는 지난 1997년 2월-2001년 9월 사이 자신이 돌보고 있던 어린이 환자 5명과 노인 환자 8명에게 치사량의 약을 투여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녀는 이 같은 혐의를 부인하냐고 묻는 판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은 그녀가 살해한 희생자 중에는 1세 미만의 영아와 91세의 노인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드 버크는 헤이그에 있는 3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신의 환자들에게 포타슘과 모르핀 등을 치사량만큼 투여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드 버크가 죽음 강박증에 걸린 정신병자라고 말하고 있다.

네덜란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아온 이 사건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는 날, 헤이그 지방법원은 취재진과 그녀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희생자 일부의 친척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피고인측은 다음주 검찰의 고발 내용에 답변할 예정이며,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녀가 공판 전 수사관들에게 했던 진술은 거부됐다. 평결은 다음 달에 열릴 예정이다.

검찰은 그녀가 살해한 환자 가운데 한 명은 신체 및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소년이었다고 말했다.

재판장이 그녀의 환자였던 아흐매드 누리라는 6세 소년의 죽음에 대해 묻자 드 버크는 "나는 죽이지 않았다. 정말이다. 내가 봤을 때 그 애는 이미 죽어있었다"라고 답변했다.

올해 40세인 드 버크는 변론 시작 전, 친척들에게 손을 흔들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법원 관계자가 자신이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에 쓴 일기의 발췌문을 읽자 그것을 골똘히 들었다.

그녀는 일기에서 "충동을 이길 수가 없었다...나 스스로도 왜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나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킬 것이다...오늘 나는 욕망에 따라 행동했다. 나는 여전히 이를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적고 있다.

5회의 살인 시도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한 피고인은 법정에서 자신이 일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타로 카드에 대한 자신의 집착적인 흥미에 대해 말했다. 타로 카드는 점칠 때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법정에서 그녀는 타로 카드를 펼쳐놓고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환자 중 누구를 고를 것인가를 정했지만 이런 일을 하면 자신이 병원 관계자들과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희생자 중에는 헤이그에 있는 유고연방 전범재판소(ICTY) 판사로 재직하던 리 하오페이 중국 판사도 포함돼 있다. 그는 1997년 11월,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이 법은 올해 4월에 발효했으며 남용을 막기 위해 엄격한 조건을 달고 있다. 사실상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20년 간 안락사가 묵인돼왔다.

지난 3월, 수사관들은 불치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여겨졌던 3명의 유아의 사체를 발굴했고, 그들의 혈액에서 유독성 물질의 흔적을 찾아냈다.

드 버크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캐나다의 위니펙으로 이주, 그곳에서 성장했다.

기소장에 따르면 그녀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매춘부로 일한 뒤 가짜 고교 졸업장을 갖고 의학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THE HAGUE, Netherlands / 이정애 (JOINS)

◇ 원문보기 / 이 페이지와 관련한 문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