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용사 12인, 핸드사이클 타고 미 530㎞ 대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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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희망의 핸드사이클’ 출정식. 손세주 뉴욕 총영사(59·둘째 줄 왼쪽에서 셋째) 등 영사관 관계자들과 월남전 참전 상이용사 16명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욕=뉴시스]

후두둑. 후두둑….

 뉴욕시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핸드사이클에 꽂아둔 태극기와 성조기가 젖어들었다. 숨가쁘게 페달을 돌리던 주자들이 하늘을 올려다 봤다. 유엔본부에서 출발한 지 3시간째. 차라리 비가 반가웠다. 30도를 넘는 무더위에 달궈진 아스팔트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비는 점점 심해져 폭우가 됐다. 누워서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핸드사이클 선수들은 비를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쏟아지는 비에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덜컹하는 순간 사이클 한 대가 뒤집어졌다. 월남전 호얀 전투에 참여했다 부비 트랩에 두 다리를 잃은 김윤근(65)씨였다. 아스팔트에서 튀어오른 뜨거운 빗물이 김씨를 적셨다. 다행히 다른 주자들은 김씨를 피했고, 김씨도 어깨가 조금 쓸린 정도의 부상에 그쳤다.

 국가유공자 1급 중(重)상이용사회 회원들이 정전(1953년 7월 27일) 60주년과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나라사랑 희망의 핸드사이클’을 시작했다. 포스코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23일(미국 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출발해 필라델피아→볼티모어→워싱턴DC→메릴랜드 인디애나폴리스 등대까지 6박7일간 동부를 종단하는 530㎞의 여정이다.

지난해 부산 유엔군 묘지에서 인천 맥아더 장군 기념비까지 700㎞의 길을 사이클로 완주한 22명의 주자 중 12명이 미국행에 올랐다. 42~7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이들은 80년대 양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차례 금메달을 딴 김영덕씨, 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한태호씨, 탁구로 국제 대회 2관왕에 오른 염낙진씨 등 각자 롬볼, 사격, 탁구, 테니스 등 주특기를 가졌다.

 출발 전 유엔 건물 앞에서는 한국전쟁 참전국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참전용사 영령에 대한 묵념과 더불어 감사의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시집을 5권 펴낸 시인이자 월남참전 상이용사인 백국호씨는 편지에서 “참전국 16개국의 용사들이 한국 땅에 흘린 피 위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도록 하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상근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부회장도 “우리는 장애인으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우리가 역경을 넘어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희망의 불꽃이 되지 않겠느냐”고 이번 종단의 취지를 강조했다. 손세주 뉴욕총영사도 행사에 참석해 상이용사들을 격려했다.

 한여름 뉴욕에서 시작된 상이용사들의 레이스는 외롭지 않았다. 지나가는 골목골목마다 미국 시민들은 손을 흔들고 박수치며 응원을 보냈다. 뉴저지 포트리 마을에서는 92세의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진 이아코네티와 재미 월남참전 전우회원 10여 명이 이들을 맞았다. 한국전 참전기념비 앞에서 노병들은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껴안았다. 진씨는 트롬본을 연주하며 이번 여정의 성공을 기원했다.

 상이용사들은 정전 60주년인 오는 27일에 워싱턴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비를 찾고, 이튿날 백악관에서 합류하는 미국 상이군인 중상이자 핸드사이클팀과 함께 인디애나폴리스 등대까지 동반레이스를 펼친다. 28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한·미 상이용사를 격려할 계획이다.

미 뉴저지=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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