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인 연극 같은 한국 결혼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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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31면

함께 동네 산책을 하던 미국인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여기엔 왜 이렇게 웨딩드레스 가게가 많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웨딩드레스·한복은 물론 허니문 전문 여행사까지 몰려 있었다.

 러시아인인 내게 한국 결혼식은 세 가지 이유로 흥미롭고도 이상하다. 첫째, 전통과 서구식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둘째, 결혼식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다. 셋째, 신랑·신부가 짜여진 각본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과 현대가 섞이면 새로운 형태나 모양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의 결혼식이 그렇다. 우아하고 화려한 한복의 전통미도 있고 부모에 대한 전통 예의범절이 있으며 서구식 예복을 입은 신랑, 화사한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새로운 하모니를 만든다. 여성들이 이런 결혼식을 싫어할 리 없다. 드레스와 한복을 모두 입어볼 수 있으니까. 아마 외국 여성들에게도 이런 점은 매력으로 다가올 터다.

 하지만 신부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오래 입고 있을 수가 없다. 준비하는 데 쏟는 많은 노력에 비해 결혼식 자체를 즐길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불과 40~50분 만에 끝난다. 러시아의 결혼식 잔치는 이틀 동안 치러진다. 그 이틀 동안 신부는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는 기쁨과 자부심을 갖는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결혼식에 열 번 이상 가봤는데, 갈 때마다 항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나네”라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짧은 결혼식을 위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준비를 하고 돈도 많이 쓸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너무 단순한 결론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본 결혼식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결혼식이든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는 건 똑같았다.

 한국 결혼식은 너무 엄격한 시나리오를 따라 이뤄지는 것 같다. 신랑과 신부가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옷차림부터 머리 모양, 걸음걸이와 눈의 움직임까지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로 기록된다. 카메라는 냉정하고 무자비하니 실수를 하거나 표정을 잘못 지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재미로 하는 것들도 한국에선 사진 촬영을 위해 이뤄진다. 좋은 예가 부케 던지기다. 서양 결혼식에선 부케를 딱 한 번만 던진다. 그런데 한국 신부들은 사진이 잘 찍힐 때까지 계속 던진다. 심한 경우엔 여섯 번까지 던지는 경우도 목격했다. 부케 던지기의 의미가 한국 결혼식에선 그 뜻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하객들은 극장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는 관람객 같다. ‘우리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는 그 연극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 분위기상 결혼식은 이렇게 치러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직장 동료나 친척, 친구들 앞에서 결혼식을 잘 치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사진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결혼식은 이미 상품화됐고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산업이 돼가고 있다. 한국 결혼식 상품은 해외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류로 인해 한국 결혼식은 아시아 주변 국가에서 유명해졌고,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국 결혼식을 체험하러 올 정도다. 여행사들이 ‘한국 웨딩 따라 하기’라는 상품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 여성처럼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한 채 웨딩드레스와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인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도 놀랍지만 결혼식이라는 중요한 의식을 더 즐기는 데 신경을 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연구교수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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