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뉴턴은 워즈워스의 뮤즈 … 과학과 시가 하나였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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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이의 시대
리처드 홈스 지음
전대호 옮김, 문학동네
794쪽, 3만5000원

낭만과 과학은 얼핏 이질적인 관계로 보인다. 마치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그러나 ‘뉴턴의 사과’는 문득 무게의 실체를 깨닫게 한다. 바로 중력이다. 무중력 공간에서 물과 기름은 잘 섞인다. 이를 깨닫는 찰나, 과학자와 시인 모두 ‘유레카의 순간’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 예배당 입구의 프리즘을 든 뉴턴 석상을 바라본다. 그리곤 차가운 대리석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고요한 표정으로 프리즘을 든/뉴턴 상/낯선 생각의 바다를 영원히, 홀로 여행하는…’이라고. 그리고는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내 가슴은 뛰노라…’고 읊는다. 이제 워즈워스는 뉴턴의 프리즘을 넘어 자연의 프리즘에서 영감을 얻는다. 주관적 낭만과 객관적 과학이 상호작용을 통해 융합하는 ‘경이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지점이다.

 플라톤은 “모든 철학은 경이감에서 시작하고, 경이감에서 끝난다”고 했다. 이 경이감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숭배의 어미’라 했다. 저자는 사물에 대한 지적 경이감이야말로 낭만과 과학을 한데 묶은 매개라고 말한다.

 예컨대 스스로 망원경을 깎아 천왕성을 발견했을 때 윌리엄 허셜이 느꼈을 경이감은 ‘새 행성이 헤엄쳐 들어왔을 때…’라고 노래한 존 키츠의 시상(詩想)으로 전이된다. 몽골피에가 열기구(그림)를 타고 하늘에 오르자 콜리지는 ‘하늘 돛배에 탄 고요한 철학자…’라고 노래한다.

 불과 물은 상극인데, 알고 보니 원소는 같다. 다만 불은 결합하는 중이고, 물은 이미 결합한 상태이다. 전율할 것 같은 경이감에 휩싸인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는 온갖 실험 끝에 마취 가스를 발견하지만, 이로써 생체와 영혼의 문제에 봉착한다. 이 고뇌는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모티프가 된다.

 바야흐로 주관과 객관이 통합되고, 자아(自我)로의 침잠과 우주로의 확장이 융합된 ‘낭만주의 과학’이 만개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경이의 시대(Age of Wonder)’로 명명했다. 시기는 제임스 쿡이 타히티에 내린 때(1768)부터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 오른 때(1831)까지. 타히티는 ‘인간의 본연’, 갈라파고스는 ‘종의 기원’을 향한 지적 탐험이 시작되는 섬이다.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가 길잡이를 맡아 천문학자 허셜과 화학자 데이비의 행장을 중심으로 과학계과 문예계의 상호작용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이런 경이의 시대는 현재도 진행형일 것이다. 유전공학, 기후변화, 외계생명, 뇌과학은 현대 ‘경이감’의 원천이다. “외계생명과의 조우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스티븐 호킹은 경고하지만, 인류의 경이감을 향한 탐험 열정은 작년에도 ‘호기심(Curiosity)’이란 이름의 탐사선을 화성에 착륙시켰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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