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4 증후군' 대학생 인생설계 강의 "길 막히면 돌아가는 방법도 있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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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 교수(가운데)가 학생들과 ‘인생설계와 진로’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국민대]

“내 인생은 내가 주도한다!” 28일 오전 9시 서울 정릉동 국민대 한 강의실. 학생 50여 명 이 구호를 외치고 손뼉을 치며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OO해운 조 과장’ ‘OO은행 최 차장’ 등 10년 뒤 불리길 바라는 자신의 호칭을 등에 써붙이고 다니며 다른 학생들로부터 격려문을 받았다. 대학수업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워 보였다. 지난 스승의 날에 “교수를 ‘갑’으로 학생을 ‘을’로 여겨왔다”는 반성문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를 모은 이의용(59) 교양과정부 교수의 ‘인생설계와 진로’ 수업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이 강의는 올해 1학기부터 신입생 필수과목이 됐다. 학과별 50여 명의 교수들이 이 교수로부터 강의법을 교육받아 모든 신입생에게 강의한다. 이 교수는 고학년 학생 담당이다.

 학생들은 한 학기 수업을 듣고 나면 자신에 대한 200여 쪽의 책 한 권씩을 갖게 된다. 이른바 ‘인생설계도’다. ‘35세 OO자동차 선임연구원으로 승진·F-1(개조차 경주대회)팀 창설·둘째아이 출산’과 같이 앞으로 10년 간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미래 언론에 보도될 나에 대한 기사·배우자를 위한 약속·내 아이에게 쓰는 편지 등도 담긴다.

 3시간 수업 중 교수가 진행하는 것은 다음 과제를 설명하는 1시간에 불과하다. 조별 활동 등 학생들의 몫이 많다. 매회 과제가 있다. 수강생 중 3~4명은 F학점을 맞는단다. 지난 수업 과제는 ‘가고 싶은 회사 직원의 명함을 받고 인터뷰 하기’였다. 김태진(체육학과 4학년)씨는 “그동안 그 누구도 꿈을 구체화하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다”며 “수업을 통해 스포츠 브랜드에서 골프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확고히 세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입시 준비로 사춘기를 날려버린 대학생들의 ‘고4 증후군’ 극복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대학교 4학년인데 직업에 대한 방향조차 정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학생의 e-메일에 충격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이 교수가 학생들의 실질적인 고민에 손을 내민 건 남다른 이력이 바탕이 됐다. 쌍용그룹 홍보실 등에서 27년 간 ‘홍보맨’으로 일하며, 중앙대·국민대 등에서 강의했다. 50대에 공부를 시작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59세의 나이로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로 정식 임용된 뒤, 겸임교수 시절부터 해온 ‘인생설계와 진로’ 수업을 본격화했다.

이 교수는 “먼 길을 돌아 교수가 됐다”며 “대기업만 바라보며 패배감에 빠진 학생들에게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방법도 있음을 깨우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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