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갈등관리 시험대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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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4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 박근혜정부의 갈등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에 ‘갈등지도’가 그려질 만큼 갈등 이슈가 곳곳에서 돌출하고 있 다. 내년 6월 지방선거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 박근혜정부의 내치(內治)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양상이다.

 29일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은 공공의료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날 “진주의료원의 부채가 279억원에 이르고, 경남도 부채가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폐업이 불가피하다”며 폐업을 공식화했다. 이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공공의료 확대를 공약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국민에게 주는 선물이 진주의료원 폐업”이라며 “ 심각한 국민 저항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반발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성명을 내고 “ 환자의 생명과 노동자 고용문제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결정 ”이라면서 “보건의료 정책은 효율성만을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협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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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은 “당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해법을 강구할 것”(최경환 원내대표)이라며 난감해했다. 새누리당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에 반대했다가 패한 ‘복지 트라우마’가 있다. 경남도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다른 결정을 한 것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7년을 끌어온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는 29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준한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대표 등이 대안 송전방식을 찾을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시간을 번 상태다. 하지만 주민들의 요구대로 우회 송전이나 지중화 방식으로 바꿀 경우 비용이 커질 게 분명해 최종 결론까진 난관이 크다.

 지역 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이슈로 대표적인 건 동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다. 28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140개 국정과제 추진전략에 신공항 건설이 빠지고, 국토교통부가 최근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 등 5개 광역단체에 “신공항 건설 용역결과에 승복한다는 합의서가 있어야 용역에 착수할 수 있다”고 밝히자 부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28일 서승환 국토부 장관을 만나 “부산 시민의 걱정이 많다. 추진 여부를 속히 결정해달라”고 압박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이전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대선 기간 중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해당지역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박 대통령의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지방자치단체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27일 “신규 철도·도로사업 투자가 5년간 중단된다는 말이 있는데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는 대통령 공약인 만큼 이와 상관없이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권 초반의 갈등관리는 향후 5년을 위한 첫 단추다. 이명박정부는 출범 초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대응에 실패해 휘청거렸다.

 하지만 신공항 건설을 비롯한 지역 SOC 사업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누군가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는 게임)’이라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공공의료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으로 번질 소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27일에야 밀양 송전탑 문제를 보고받았을 정도로 청와대의 갈등 이슈에 대한 접근은 안이했다. 각 지역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자 박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미리미리 성의를 갖고 대화를 나누고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까지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매번 문제가 빚어질 때마다 듣게 된다. 미리미리 선제적으로, 진정성을 갖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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