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희망-의심 교차속 쿠바 도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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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가 찬사와 함께 우호적인 몸짓으로 하바나에 도착한 카터를 맞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일요일(이하 현지시간) 쿠바에 도착했다. 전·현직을 통틀어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것은 1928년 캘빈 쿨리지 이후 그가 처음이다.

카터(77)는 금요일까지 쿠바에 머문다. 그는 일요일 저녁 공식 만찬을 포함, 최소 두차례 쿠바의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75)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 카터는 1959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한 후 쿠바를 방문한 최고위 미국 인사다.

카스트로는 카터가 하바나 호세 마르티 공항에 도착하자 환영사를 통해 "따뜻한 마음과 우정으로 방문을 환영한다"며 "우리는 진심으로 당신의 방문이 당신의 애국심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이용되거나, 가난하고 버림받은 수많은 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당신의 재단에 대한 원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당신의 공로가 깎아내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카터는 5일간의 방문 일정 동안 미국과 쿠바가 미묘한 관계에 있던 시기에 등장한 반미 지도층과도 만나 쿠바의 인권과 생화학 무기 등 민감한 사안을 비롯, 최근 증가하고 있는 양국간 교역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카터는 도착 인사에서 "우리는 양국간 공통 관심사 및 현재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여러 분야를 확인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주 카터는 "쿠바와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쿠바 방문 목적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양국간 대화의 새로운 도약이 될 수 있다"고 기대를 표현했다.

카터는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 금수조치를 종결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 부시 행정부의 대공산국가 정책과 반대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부시 행정부는 "쿠바가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고 인권을 개선을 할 때까지 금수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카터의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쿠바 방문을 허용했다. 국무부는 지난주 카터의 방문 목적 보고를 들었다.

카스트로, 카터 주장에 경의 표해

표면 상 카스트로와 카터의 만남은 의외다.

카터는 1981년 퇴임 이래 분쟁 해결 및 전세계 민주주의의 향상 등 인권 보호에 헌신해 왔다. 한편,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를 국민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자라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1977년과 1986년 두차례 쿠바에서 미국 행정부의 비밀 외교 임무를 수행했던 베르나르도 빈스는 "이번주 만남에서 상호 존중이 이뤄지면 진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스는 "카스트로는 내게 '지미 카터는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인물'이라고 여러번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과 쿠바 당국의 관계는 카터 행정부 초기인 1977년 '하바나 내 미국 사업 구역(U.S. Interests Section in Havana)'을 만들면서 개선된 바 있다. 하바나 내 미국 사업 구역은 1961년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래 미국이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쿠바 자본을 인정한 것이었다.

카터는 쿠바계 미국인들이 1년에 한차례 쿠바 방문을 허용 및 미국 시민과 쿠바 및 미국 이중국적자들의 신속 귀환에 대한 협정을 성사시켰다. 빈스는 카스트로가 카터에 대한 호의적인 처사로 1978년 3천6백명의 정치범을 석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년 후, 쿠바 마리엘에서 10만명의 쿠바인을 태우고 플로리다를 향해 출발한 난잡한 소형 보트를 놀란 카터 정부의 미국 해안 경비대가 체포한 것을 두고 카스트로가 비난하자 양국의 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에 들어섰다.

복합적인 반응들

게다가 1996년, 쿠바군이 미국 소유 비행기를 격추시켜 쿠바계 미국인 4명을 죽인 사건과, 쿠바를 탈출하다 어머니가 죽어 미국 당국이 구출한 5살짜리 엘리안 곤잘레스를 둘러싼 격렬한 법정 투쟁 때문에 두 나라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그리고 지난주,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쿠바가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 기술을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에 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바 당국은 이런 혐의들을 부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화해를 향한 움직임도 감지됐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농부들과 업계는 의회에 식량과 의약품 등의 교역을 할 수 있도록 쿠바에 대한 41년 간의 금수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어왔다.

카터의 쿠바 방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미국-쿠바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마이애미 내의 완강한 반 카스트로 유권자 집단을 대표하는 예아나 로스 레흐티넨(공화, 플로리다)의원은 "한때의 헛소동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녀는 "카스트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진짜 독재자라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될까?"라고 반문했다.

반면, 미국과 쿠바의 관계를 정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쿠바 위원회(Cuban Committee for Democracy)의 알프레도 듀란 부이사장은 이번 방문을 '대단한 행보'라고 말했다. 대외관계 자문위원회의 라틴계 미국인 연구 부소장인 줄리아 스웨이그는 이번 만남으로 쿠바와 미국의 견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상징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 방문은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옛 생각을 없애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카터의 방문으로 쿠바에선 인권적인 행동이 여러 건 포착됐다.

쿠바 정부는 가장 유명한 반체제 정치범 가운데 한명인 블라디미로 로카 안투네즈를 지난주 석방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불법적으로 용인됐던 기독교 자유 운동인 '프로젝토 발레라'가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정치범 사면, 사기업 소유권 및 민주적 선거를 허용하자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1만1천20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쿠바의 헌법은 국회가 최소 1만명의 등록 유권자가 서명한 청원서에 담긴 입법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프로젝트 발레라가 주목할만큼 많은 서명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이 실행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쿠바 국회의 리카도 알라콘 의장은 "카터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급진전되기를 희망한다"고 기대를 표했다.

알라콘 의장은 "카터 대통령의 방문은 장차 양국 사이에 서로를 존중하고, 선린적이며, 도덕과 윤리적 가치에 기반한 기반한 정책이 실현될 것이라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HAVANA, Cuba (CNN) / 이정애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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