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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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외간의 문제. 고부간의 문제 혹은 친구간의 문제. 나아가서는 국제간의 문제들이 우리의 주변에 부단히 육박해온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누가 이기나보자」는 경쟁의식이 숨어있는 법이다. 과연 누가 이기는 것일까. 그리고 승패의 판단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자못 흥밋거리다.
요즈음 판문점을 둘러싸고 혹은 의원단체의 원조방법을 둘러싸고 우리측의 논란과 항변이 높아져가고 있다. 그러나 남의 행동을 시비하기에 앞서 나는 과연 무엇을 잘했는가를 반성해보는 것도 싸움을 이기는 하나의 방법일는지 모르겠다. 남의 오만을 나무라기에 앞서 나의 실력부족을 한탄함이 옳을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겸허와 양보와 인내의 미덕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밟히기 싫으면 재빨리 달아나든지 상대방보다 더 높은 곳에 있든지 무슨 수가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지렁이는 땅속으로 파고들어 피신하는 재주라도 있다. 사람 치고 그만 꾀도 없다면 지렁이만도 못한것이 아닌가.
그러나 두더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아들딸로 자인하고 싶은 우리 인간들이다. 거기에는 그만한 댓가가 요구된다. 근시안적 소견으로 화난다고 총칼을 들이대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내가 옳다고 끝내 주장하는 것이 결코 이기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비켜 설 줄 알고 때로는 억울한 매도 맞고 누명도 쓰되 성스러운 궁극의 목표를 향하여는 끝내 마음의 지조를 지켜가며 길을 닦는 덕이 아쉽다. 비록 오늘 돈이 없고 권세가 없을지라도 내일을 향하여 꾸준히 노력하며 하느님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인간이 되고싶다. 이기고 지는 판단은 하느님께 맡기면 될것이 아닌가. 나의 적까지라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덕의 힘을 가진 사람이 결국에 가서 이기는 길이 아니겠는가. <주정일(보사부부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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