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서 지내며 성미산 지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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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마포구청 뒤편의 나지막한 성미산.

개나리꽃 활짝 피는 봄이면 나물 캐는 재미가 쏠쏠하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울 수도 있어 하루 평균 1천명이 넘는 인근 주민이 찾는다.

하지만 최근 이곳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영하 14도의 맹추위가 몰아쳤던 지난달 29일 서울시 측이 아카시나무.참나무.오리나무.소나무 1천여 그루를 잘라냈고 이에 반발한 주민들이 농성에 돌입했기 때문.

서울시는 넓이 3만평의 이 산을 50m 높이로 깎고 1만2천㎥와 1만3천㎥ 규모의 수돗물 탱크 두 개를 세워 '성산배수지'를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인근 지역에서는 옥상 물탱크가 사라져 주변 경관이 좋아지고 더 맑은 수돗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수돗물 사정이 약간 개선되는 것보다 성미산을 보존하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곳은 주민들의 안식처일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소쩍새.붉은배새매가 서식한다.

이에 따라 아름드리 나무가 무더기로 쓰러진 그날 이후 주민들은 다시 공사장비가 밀고 들어올세라 능선 세 곳에 천막을 치고 낮에는 물론 밤에도 5~6명씩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다. 주민 30여명은 설 연휴에도 성미산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면서 자리를 지켰을 정도다.

지난달 초 결성된 '성미산 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의 김종호(38) 위원장은 "일단 배수지 공사로 숲이 파괴되면 뒤이어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결국 성미산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며 "주민에게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배수지 건설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배수지 예정부지 바로 아래 땅은 현재 모 대학 재단에서 4백여 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주민들이 이곳 성미산이 훼손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1년 여름. 성미산 땅 2만평을 가진 이 재단 측이 아파트 건설을 위한 '도시계획시설 변경 결정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 마포구청이 주민의견을 수렴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서울시의 배수지 건설 계획도 알게 됐다. 이에 성미산 지키기 주민연대가 결성되고 10월까지 이웃 주민 2만1천여명으로부터 배수지 건설 반대 서명을 받아냈다. 지난해 5월에는 성미산 축제를 열어 산의 소중함을 알리기도 했다.

이런 반발에 부닥쳐 서울시는 2001년 11월 공사에 들어가려 했던 계획을 두 차례 연기했고 최근에야 시공업체를 선정했다. 그 후 인적이 뜸한 1월 29일 오전 9시쯤 경찰과 경비업체의 도움을 받아 기습작전 하듯 30여명의 인부가 벌목에 나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유성문(38)씨는 "비번인 토요일에 근무키로 하고 농성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배수지 건설을 막는 일은 직장일마저 제쳐놓을 정도로 절박한 일이 됐다. 4일 낮에도 대책위 주민 1백여명이 덕수궁 앞에서 집회를 하고 서울시에 배수지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하는 측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성산동.망원동.서교동의 16만 주민을 위해 배수지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봄철을 앞두고 벌목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상수도사업본부 측은 배수지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아카시나무뿐인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강찬수 기자 <envirep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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