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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추경' 3316억원 통과 … 정신 못 차린 국토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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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쪽지 추경’에 대한 재심사를 앞둔 29일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개회 예정 시각은 오전 11시였으나 회의 참석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의실 옆에 붙은 소회의실엔 여야 의원들이 오전 일찍부터 모여 있었다.

 국토위 예산심사소위는 25일 정부 추가경정예산안(6767억원)에서 4274억원을 증액한 심사안을 가결했다. 긴급한 필요에 의해서만 예산안을 편성해야 할 추경안에 밀어 넣은 건 대부분 도로·철도 등 지역구 현안사업에 대한 예산이었다. 선심성 지역예산을 밀어 넣었다는 비판이 일자 국토위는 26일 증액안을 처리하지 않고 결정 시한을 이날로 늦췄다.

 소회의실에선 비판 여론이 높으니 증액분을 모두 빼야 한다는 의견과 최종 결정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맡기고 국토위 원안(4274억원 증액안)을 통과시키자는 의견이 맞섰다고 한다. 결국 오전 11시30분쯤 회의장에 들어온 여야 의원들은 절충안으로 증액한 예산 중 5개 지역 도시철도 예산 958억원을 삭감하는 수정안을 채택했다. 쪽지 예산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4274억원에서 3316억원으로 규모만 줄여놓은 것이다.

 쪽지 추경 논란에 대해 민주통합당 이윤석 의원은 “지역 예산을 챙기는 건 국회의원의 숙명”이라고 했고,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도로 등 SOC도 복지·일자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액과 감액을 거듭한 국토위의 예산 심사는 한마디로 난센스다.

 정부는 추경을 위해 15조8000억원의 국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나눠 져야 할 막대한 빚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경기부양을 위한 최적의 사용처를 찾고, 가장 적당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수 있게 결정해야 한다. 의사봉을 두드린 주승용(민주당) 국토위원장조차 “이번 결정은 추경 목적과 취지에 사실상 대부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더 큰 문제는 3316억원이나 증액하면서 정작 정부가 낸 추경안은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이종진 의원은 “국토위가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데 책임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낸 추경안을 꼼꼼히 심사하기보다는 자기 지역에 얼마큼의 돈을 따낼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다. 어떤 의원은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말이 안 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하면 우리 지역구는 열악하다”면서 예산을 관철하려 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예산을 처리해 놓고, 국민에게 이해해달라는 게 바로 국토위원들이다.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