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배낭을 멘 테러 용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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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검정 모자에 검은색 ‘배낭을 맨’ 남자와 흰 야구모자를 뒤로 돌려 쓴 남자. 총격전 끝에 사살·검거되기 전 미국 연방수사국이 공개 수배한 사진에 나온 보스턴마라톤대회 폭탄테러 용의자들의 차림새다.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둘 다 폭발물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배낭을 매고’ 사건 현장을 배회하는 모습도 공개됐었다.

 두 용의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배낭을 맨’ ‘배낭을 매고’라고 흔히 표현하지만 이는 맞춤법에 어긋난다. ‘배낭을 멘’ ‘배낭을 메고’라고 해야 맞다. ‘배낭을 매다’와 같이 사용하면 배낭을 어깨에 걸치는 게 아니라 노끈 같은 것으로 몸에 묶는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매다’는 끈이나 줄 등의 두 끝을 서로 마주 걸고 잡아당겨 잘 풀어지지 않게 마디를 만들다는 뜻의 동사다. “운동화 끈을 매어라” “옷고름과 대님 매는 법을 모른다”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허리띠를 안 매면 바지가 흘러내린다”처럼 쓰인다. 많은 사람이 헷갈려 하는 안전띠나 어깨띠도 ‘매다’를 사용한다. 끈을 몸에 두르거나 감아 풀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므로 “조수석 절반은 안전띠 안 매는 것으로 나타나” “어깨띠를 매고 있는 선거 후보들”과 같이 쓰는 게 바르다.

 어깨에 걸치거나 올려놓는 것, 비유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거나 임무를 맡는 것을 이를 때는 동사 ‘메다’를 사용한다. “전시장은 책가방을 멘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소방관들은 왜 멜빵을 멜까” “총을 메고 행군하기가 녹록지 않다” “모두 제 과오인 만큼 총대를 메고 사죄하겠다” “젊은이는 나라의 장래를 메고 나갈 사람이다”와 같이 쓰인다.

 ‘ㅐ’와 ‘ㅔ’의 발음 구별이 어렵다 보니 철자에서도 혼동을 일으켜 ‘매다’와 ‘메다’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매다’는 묶는 것(結), ‘메다’는 걸치는 것(擔)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둘러매다’와 ‘둘러메다’도 마찬가지다. ‘둘러매다’는 “허리에 띠를 둘러매다”처럼 한 바퀴 둘러서 두 끝을 마주 매다, ‘둘러메다’는 “쌀가마를 어깨에 둘러메다”처럼 들어 올려서 어깨에 메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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