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덕수궁 앞 불법 농성, 이제는 거둬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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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펜스를 철거하고 화단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쌍용차 해고 근로자들과 구청 측이 충돌했다. 불법 시설물인 천막 농성장 철거를 놓고 빚어졌던 갈등이 또다시 재연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져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제 오전 문화재청은 화재로 훼손된 덕수궁 돌담과 서까래를 수리하기 위해 대한문 앞 화단과 돌담 사이에 설치했던 펜스를 철거했다. 이어 중구청은 기존 화단을 확장하고 화단 우측 돌담 앞에도 대형화분 10여 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이 공간에 천막 농성장이 다시 들어설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대해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농성 천막이 설치됐던 때보다 시민보행권이 더 악화됐다”며 화단 조성 작업을 저지하려 했다. 결국 화단에 들어가 시위를 벌이던 두 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돼 경찰에 연행됐다.

 이렇게 농성장 재설치를 막기 위해 화단을 넓히고, 또 화단 조성에 항의하다 충돌이 벌어지는 건 정상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대한문 앞 보도가 시민들의 공공시설이라는 데 있다. 쌍용차 범대위가 이런 공공시설에 천막 농성장을 세워놓고 점거해온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도로법상 도로(보도 포함)를 점용하려면 관할 구청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허가 없이 도로를 점용한 때는 처벌하도록 돼 있다. 특히 불법 농성장으로 인해 시민들이 보도를 편하고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덕수궁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불편을 겪어야 했고 지난 3월 일어난 화재처럼 문화재 훼손 우려도 작지 않았다.

 지난해 4월 해고 근로자들이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만든 건 2009년 정리해고 이후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쌍용차 문제는 농성 천막을 다시 세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보도 점거를 계속하려는 건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이미 많은 시민이 해고자와 그 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 이제는 법을 지키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