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폭 수갑 풀어주는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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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 조사 중 도주한 조직폭력배의 수갑을 현직 경찰관이 풀어주고 그 수갑을 같은 조직원에게 건네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4만 경찰관 가운데 '한 꼴뚜기'의 무분별한 처신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엔 너무나 꼴사납다.

당초 이 사건은 서울지검 강력부가 지난해 10월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원들을 검거,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검찰 수사관들의 구타로 숨지면서 사회문제가 됐었다.

그 여파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퇴진하고 서울지검장은 문책성 인사조치 됐으며, 담당검사는 구속됐다. 강력부 특별조사실이 폐쇄되고 밤샘조사가 없어지는 등 검찰수사 관행도 대폭 개선됐다.

문제의 경찰관은 파출소의 수갑 열쇠가 맞지 않자 경찰서 형사계의 열쇠를 가져와 경찰서 주차장에서 수갑을 풀었다고 한다. 범인 검거가 주업무인 경찰관이 경찰서 안에서 범인 도피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니 이래저래 국민들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셈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검찰 이상의 개혁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경찰관이 당시 근무 중이었다면 파출소.형사계.경찰서.경찰청 지휘계통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파출소 근무자가 형사계에서 수갑 열쇠를 마음대로 갖고 나올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면 제도적인 허점이므로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또 조폭과의 밀착이 과연 문제 경찰관 한명뿐인지도 광범위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경찰 내에는 이번 사건이 수사권 독립 갈등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 앞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세는 옳지 않다. 검찰은 문제의 경찰관이 평소 조직폭력배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수사에서 도피방조 혐의 외에 조폭과의 유착부분과 경찰 내 비호세력이 드러나면 길들이기 수사 여부는 자연히 밝혀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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