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분권형 대통령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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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역대 대선 중 이번 대선보다 대결구도의 후유증이 심한 적은 없었다고들 말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지금까지의 지역 대결구도에 세대간의 문화적 대결구도가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대결구도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 당선자는 지난 주말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모델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나왔다. 의미있는 정치실험으로 보이지만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프랑스에서는 두 사람이 모이면 정당이 탄생하고, 세 사람이 모이면 헌정위기가 발생한다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정치가 분열과 대립으로 점철돼 왔다.

이와 같은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는 서구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정치적 아이디어를 실험해 왔다. 드골 대통령이 만들어 낸 이원집정부제도 이러한 정치적 실험의 제도적 결과에 다름아니다.

*** 프랑스 동거정부의 사례

盧당선자가 말하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내정은 의회에서 다수당으로 구성되는 내각의 총리가 관장케 하는 제도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제왕적 통치에 시달리고 대결적 정치구도에 갇혀 있는 우리 정치에 일단 숨통을 열어 놓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집권 초기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인센티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분권형 대통령제는 '무책임의 제도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무책임의 제도화는 피하기 힘든 이 제도의 아킬레스 건(腱)이다. 프랑스 동거 정부의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정부를 대표한다며 서방선진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행위는 애교쯤으로 받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국기 문란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지가 불분명해지는 문제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전전(戰前) 일본의 천황과 내각 간의 이원집정부제는 누구에게도 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무책임 체제'의 전형적인 예다.

물론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하고 국회의원 임기를 3년으로 해 선거를 동시에 함으로써 어느 정도 혼란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연 분권형 대통령제로 노무현 정권의 국정이념을 정책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다. 개혁의 추진을 위해서는 통치동맹이 필요하다.

그래서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레닌은 "볼셰비키의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악마는 물론 그의 할머니와도 동맹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정부는 개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오월동주(吳越同舟) 같은 DJP동맹을 결성해 국정에 임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현재 통치동맹을 맺을 적조차 없는 실정이다. 내년 총선에서 이러한 상황이 바뀌리라는 보장도 없다. 만일 동거정부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盧정권의'개혁과 변화'는 물건너 갈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수 지배(majority rule)와 직접민주주의(direct democracy)통치에 대한 유혹이 발생한다. 벌써부터 당선자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과 함께 하는 정계개편'의 움직임이나, 살생부의 살포나 노사모와의 '공범'관계 설정을 통한 탈 정당적 움직임들은 이러한 유혹의 잠재적 증거들이다.

*** 다수의 지배 유혹 버리길

그러나 여기서 盧당선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주지하다시피 YS와 DJ는 다같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둘 다 힘에 의한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통해 다수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다 정국의 대립과 혼란만 불러왔다.

또 둘 다 포퓰리즘적 여론몰이를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통치를 시도하다 국민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사회갈등을 증폭시켰다.

盧당선자는 우리의 '정치 수준'이 이 실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정치가의 몫이다.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전략과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盧당선자가 이러한 전략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때 아무리 변화를 원해도 우리 정치의 대결구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張達重(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