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썰렁한 국내 FA 시장 그리고 박찬호

중앙일보

입력

FA(Free Agent : 자유계약선수) 시장이 예상보다 너무 썰렁하다.

9~10시즌 동안 노력의 결실로 대박을 노리고 있던 몇 명 선수들 중 SK 와이번즈의 투수 김원형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구단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나 금액을 따져 볼 때 예전보다 못하다는 인상이다.

최근의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것도 그렇고 선배 FA 선수들의 부진 또한 그들의 몸값을 낮추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기를 잘못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삼성을 비롯한 몇몇 구단들은 주머니 사정이 꽤 좋아 과감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았으나 올 겨울에는 FA 선수들에게 예전과는 달리 거액을 배팅하는데 퍽이나 망설이고 있으며 어느 구단은 아예 선수와의 협상에서 제대로 흥정도 하지 않고 초기부터 포기를 선언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 김기태, 홍현우를 비롯한 이전의 FA로 혜택을 본 선수의 다수가 극심한 부진에 빠져 팀에 공헌하지 못했고 또한 거금을 투자한다 손치더라도 어느 누구도 우승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각 구단 고위층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를 예상이나 한 듯 올 겨울 FA 자격을 갖춘 17명의 선수들 중 단 4명 만 신청을 하였는데 내년 이나 내후년에 가면 나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도 별로 없는 데 좋은 본보기가 바로 양준혁이다..

양준혁은 아다시피 올 시즌 타율 1위에 등극하며 9년 연속 3할을 기록하는 등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다. 따라서 그를 원하는 구단은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몸값을 감안하면 거의 다 고개를 가로 젓고 있는 현실이다.

전 소속구단이었던 LG 트윈스를 제외한 다른 구단에서 그를 영입하려면 최소한 8억 1천만원(전 연봉 2억 7천만원 X 300%)에 선수 1명을 트윈스 구단에 보상을 해야 한다. 만약 선수를 주지 않겠다면 12억 1천 5백만원(전 연봉 2억 7천만원 X 150 % X 300%) 이라는 거금이 나간다.

이렇게 되면 구단에서는 그 금액으로 차라리 외국인 선수 3명을 영입하는 게 낫다는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다. (참고: 현 규약에서는 외국인 선수의 몸값의 최대액은 20만 달러, 약 2억 6천만원이다)
여기에 양준혁이 받아야 할 연봉은 4년 계약으로 한다면 최소 3억으로 잡아도 12억원을 책정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다. 계약금 비슷한 사이닝 보너스로 10억원 가량을 지급한다면 양준혁에게 투자하는 돈은 최소한 30억원 가까이 든다는 결론이 나온다.

양준혁 등 특급 선수들에게는 당연한 요구액이라고 하겠으나 그룹에서 돈을 타서 운영하고 있는 각 구단에게는 무리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를 영입한다고 해서 한국 시리즈 우승을 보장 받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내년 혹은 내후년에 FA 자격을 얻는 선수들 중 정상급이라고 하더라도 거금을 확보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눈을 돌려보자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코리아특급' 박찬호도 양준혁과 별 다름이 없다.
 
불행히도 박찬호가 어렵게 FA 자격을 얻은 싯점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체 미국 경제 사정이 어려운 것을 차치하더라도 많은 구단들이 최근 몇 년간 과잉투자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있고 또한 FA 선수들을 영입해도 팀 성적에 별 다른 영향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는 시기다.

굳이 예전의 케빈 브라운과 7년 간 1억 5백만 달러로 계약한 LA 다저스와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9년 간 1억 1천 6백 5십만달러를 들인 신시내티 레즈 여기에 매니 라미레스에게 8년 간 1억 6천만달러에 계약한 보스턴 레드삭스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형 선수들을 비싼 값에 영입하고도 기대 이하의 성적의 올린 구단이 즐비하다.

지난 겨울 10년간 무려 2억5천 200만달러라는 초유의 거액을 들여 시애틀 매리너즈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한 텍사스 레인저스는 기대와는 달리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최하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남겼고, 뉴욕 메츠의 마이크 햄턴을 8년간 1억 2천 100만달러를 들인 콜로라도 로키즈 역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다.
 
올 시즌 한 때 연봉이 2천만달러라는 말 까지 나올 정도로 상승세였던 박찬호는 현재 허리부상설 까지 겹쳐 1천 3백만달러 대가 적정선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올 겨울 FA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정상급의 타자는 한국에서, 투수는 미국에서 FA 대박의 꿈이 기대 이하라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 신종학 : 프로야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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