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반도체 생산업체 자금사정 갈수록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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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D램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이미 손해 보고 물건을 파는 '적자생산' 상태에 들어선 가운데 미국의 테러사태로 컴퓨터 등 정보기술(IT)산업은 더욱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D램 경기가 연말 특수에 힘입어 4분기 중 재고조정 과정을 거친 뒤 내년 2분기쯤 회복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테러사태를 맞아 올 4분기를 재고 축소 없이 그냥 넘기고 회복 시점도 내년 하반기 이후를 기약해야 할 것이란 수정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D램 생산업체인 인피니온은 24일 자금 악화설에 휘말리며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 회사 주가는 24일 뉴욕증시에서 7.1% 떨어진 12.4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14%나 곤두박질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쟁사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테러발생 이후 크게 떨어졌다가 24일엔 5.6% 올라 22.3달러를 기록했다.

인피니온의 자금악화설은 지난 7월 증자를 통해 15억유로(약 1조8천억원)를 조달했으나 이 돈이 바닥나 가면서 연내 추가 조달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인 윌리엄 윌슨은 24일 보고서를 통해 "인피니온이 앞으로 1~2분기 안에 자금을 재조달해야 할 것으로 본다" 고 밝혔다.

그는 "대개 연말에 가까워지면 D램 수요가 늘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그럴 조짐이 없어 세계 반도체업체들의 자금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 고 진단했다.

자금을 넉넉히 쌓아뒀던 업체들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6~7조원의 자금을 확보 중인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는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회사채를 현금 상환하려던 계획을 바꿔 지난 8월 만기가 돌아온 5천억원의 회사채를 다시 발행한 데 이어 내달 중 5천억원어치를 더 발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테러사태의 여파를 지켜본 뒤 연말께 회사채를 5천억원 정도 추가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투증권의 민후식 애널리스트는 "현재 자금조달 계획이 없는 업체는 마이크론 정도" 라며 "반도체 경기회복이 늦어질 수록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하이닉스와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이 큰 고통을 받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죽어야 나머지가 산다는 게 세계 반도체업계의 운명" 이라며 "살아남기 위한 자금확보 노력이 갈수록 치열해 질 것" 으로 내다봤다.

김광기 기자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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