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정 작년보다 야위어 수첩 들고 군중대회 지휘
지난 10일 노동당 7차 대회 축하 평양시 10만 군중대회의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스마트폰에 수첩과 펜을 든 모습은 오빠 김정은 당 위원장을 보좌하고 행사를 연출하는 역할
-
"김정은 동지와 운명도 함께"…북한 당 대회 참가자들 '충성 맹세문' 채택
북한 조선노동당 7차 대회 참가자들이 지난 11일 평양 4ㆍ25문화회관에서 ‘김정은 동지께 드리는 맹세문’ 채택 모임을 가졌다. 사진은 12일자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맹세문 채택
-
北 군중대회,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에게 건넨 것은
[사진 조선중앙TV 캡처]북한이 10일 오전 7차 노동당 대회를 자축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와 민간 퍼레이드인 군중시위를 김일성광장에서 열었다. 지난 6~9일 진행된 당대회에서 ‘노
-
“북한, 당 대회 앞두고 평양ㆍ국경 지역에 특별경비주간 선포”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3일 “북한이 36년 만에 개최하는 제7차 조선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2일부터 평양시와 국경지역에 특별경비주간을 선포했다”고 밝혔다.북한은 1980년
-
"김일성 향한 참배 의례행위 아니다"
“김일성에 대한 참배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행위가 아니다.”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1995년 방북해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한 혐의(국가보안법
-
[사진] 과업관철 다짐 北군중대회
북한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 6일 평양시민들이 참가한 대규모 군중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과업 관철을 다짐하는 군중대회다. 행사에 참가한 평양
-
[브리핑] 북 “군량미”연설 내용, TV서 삭제
북한 관영매체들이 평양에서 열린 군중집회를 보도하면서 김영복 만경대남새(채소)공장 관리위원장의 ‘군량미’ 관련 언급을 삭제한 뒤 방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
평양서 10만 군중대회
북한이 대규모 군중대회를 열어 우리 측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를 다시 모략극이라고 주장하고 남한 정부를 거칠게 비난했다. 30일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이날 오전
-
북한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
북한이 자신들의 핵실험 감행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은 27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명의의 성명에서
-
경제에 초점 맞춘 北 신년 공동사설
4일 평양시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된 ‘새해 공동사설 과업 관철을 위한 평양시 군중대회’. 10만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북한은 한 해 시정방침인 공동사설 발표 이후 지역별 군중대
-
2007년 북한 주요 일지
◆ 1월 1.1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 “승리의 신신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발표 1. 1 김정일 국방위원장,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새해 첫
-
[1994]
1994. 01. 02 김일성, 사민당위원장 김병식·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 등 정당·단체대표 면담 1994. 01. 14 훈민정음 창제 550주년 '평양시 기념보고회' 개최 19
-
[1993]
1993. 01. 01 북한·체코, 북한·슬로바키아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1993. 01. 02 김일성, 범민련해외본부의장 겸 재독음악가 윤이상 면담 1993. 01. 08 평양
-
[1962]
1962. 01. 06 평양방직공장 초급당위원회 확대회의 개최 1962. 01. 15 김정일,[현대제국주의의 특징과 침략적 본성에 대하여] 집필 1962. 01. 17 건설성 설치
-
[1948]
1948. 1. 09 김두봉, 조선어철자법 개정초안에 대해 보고 1948. 1. 10 조소문화협회, 제 2차 전체회의 개최(-11일) 1948. 1. 11 김일성 위원장, 인민군
-
[1947]
1947. 1. 03 북조선소비조합 제5차 확대위원회 개최, 양곡수매사업에서의 농민의 자원원칙 결정 1947. 1. 07 면,리 인민위원회 위원선거를 실시키로 하고 중앙선거위원회
-
평양 10만명 군중대회 '반미 구호' 안나와
3일 김일성광장에서 10여만 명의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당 구호' 관철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반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미제'나 '미국'이라는 말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
[2005]
2005. 1. 1 北, 신년공동사설 발표 - 한미연합사령관, 2008년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임무·역할 불변할 것임을 강조 2005. 1. 3 유엔, 2004년 대북지원모금 계획대
-
[91-2000]
1991년 1. 3 : 최의웅(군사정전위 북한측 수석위원), 유엔군측 수석위원을 한국군장성으로 교체하는 것을 반대하는 담화 발표. 1.28 : 김영남(부총리 겸 외교부장), 알렉산
-
[81-90]
1981년 2. 5 : 허담(외교부), 비동맹외상회의 참석차 뉴델리에 체류 중 성명 발표, 「세계비동맹운동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및 전쟁정책에 대항, 더욱 회원국들간의 단결을 시위
-
[71-80]
1971년 1. 4 : 노동당 중앙위 비서 양정섭, 최용건 병문안차 동독 향발(9일 귀환). 1.22 : 외무성, 미국이 인지 전역에서 「침략전쟁을 확대」하고 있다고 「성명」발표.
-
[61-70]
1961년 1.11 : 북한-예멘 간 통상협정 및 무역대표부 설치의정서 조인. 1.12 : 북한-루마니아 간 방송협정 체결. 1.23 : 쿠바주재 북한 초대대사 홍동철 임명. 1.
-
[51-60]
1951년 2. 1 : 유엔총회에서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 4.15 : 외무상, 박헌영, 한국전 평화 해결을 유엔에 요청. 4.18 : 북한주재 루마니아대사 바부취빨웰 취임. 5.
-
[45-50]
1945년 8. 8 : 소련, 대일참전하여 만주와 북한(경흥) 방면으로 진공개시. 8.10 : 소련군, 웅기 점령. 8.12 : 소련군, 나진, 청진 점령. 8.20 : 소련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