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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白凡 "나는 김일성 만나러 왔을뿐"
◇1948년4월19일 〈남북연석회의〉 ▲김두봉(金枓奉.北勞黨위원장)개회사(註:예비회의.오전11시)=김구(金九)와 김규식(金奎植)의 요청에 의해 회의가 연기되었다.조선해방을 위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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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蘇,김일성에 신문보도 일일이 지시
◇1948년4월9일 〈소련군 극동(極東)사령관 비루소프 암호전문〉앞으로 조선에 대한 모든 지시는 나를 거쳐야 한다고 스티코프동지에게 전하라.그는 나의 정치부관이지 소련대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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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金九 올때까지 대표자회의 연기
◇1948년4월2일 ▲김구(金九)와 김규식(金奎植)의 숙소로브라운(미국 선교사)집을 제공하려면 수리해야 한다▲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평양에 도착한 4월8일부터 돌아갈 때까지 호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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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년만에 밝혀진 南北정치협상 진상
◇3월24일(확대회의에서 김일성에게 지시) -南北韓 정세보고는 김일성파,김두봉파,허헌파(남로당 위원장 박헌영이 보고를 못할 경우)3개 그룹 대표가 한다. -의견을 교환한 후 정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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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거물 朴正愛 46년 서울에 왔었다-KBS 필름입수 방영
KBS가 최근 입수한 「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주최 미소공동위촉성대회」필름자료(14일 저녁 8시 방송)에서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이던 朴正愛(1907년생)가 서울에 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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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뮬레이션소설 인기
199×년4월 하순.북한이 새로 개발된 미사일 노동2호를 시험발사하는 도중 탄도궤도 추정에 오류가 발생,이 미사일은 그대로 독도에 떨어져 핵폭발을 일으킨다.아직 북한의 핵개발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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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하(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50)
◎지주들 거센저항도 역부족/우익몰락 가속화/반공청년들 공산당 사무소등 습격·방화/「인민위」선 노동자선전대 조직/빈농에 “겁내지 말고 투쟁하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의 기습등장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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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빈농을 끌어안아라”(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9)
◎토지개혁 상/「자작농 염원」겨냥 지지기반 확대 포석/무상몰수·무상분배,소작제도는 금지/곳곳서 소요… 땅 뺏긴 지주들 대거 월남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46년 3월6일 발표한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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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권력장악,남북분단 재촉(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8)
◎「임시인민위」 설립/김,임정수립전에 북쪽 개혁 내세워/소 군정 간섭 안받고 독자 결행설도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결정으로 비롯된 혼란이 조금씩 가라앉을 무렵인 46년 2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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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골격의 「합당그림」(비록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32)
◎박헌영김일성 5차회동:3/지지기반 확대 노려 대중정당 표방/비공산당에 대표 맡겨/김,백남운 등 면담 추진 46년 7월의 시점은 남북의 공산당에 변화를 강요하고 있었다. 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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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박헌영-김일성 5차 회동(1)|「좌우합작」문제 막판 절충
박헌영은 서울로 되돌아간지 나흘만인 46년7월말 다시 평양에 모습을 나타났다. 김일성과의 다섯 번째 회동을 위한 것이었다. 5차 회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45년10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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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 전국확대 공방(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6)
◎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4/국내파,지주많은 남조선은 완화주장/“찬탁운동 미지근” 박헌영에 호된비판 서울에서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박헌영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46년 4월5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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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감투놓고 계파 알력(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5)
◎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3/간부자격·배분비율문제등이 초점/김일성 “빨찌산출신 우대” 뜻 비쳐 마찰 박헌영김일성 3차 회동은 소모적인 권력경쟁보다는 정치현안 실무논의라는 성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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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웃고간 평양 울며 떠났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2)
◎신탁통치 소용돌이:3/분국협의회때 “총비서”아닌 “동지”/김일성과 회동후 주도권 빼앗겨 신탁통치문제는 김일성과 박현영의 권력레이스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신탁통치가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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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소용돌이:2(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1)
◎소 군정/반탁통치 온갖회유·협박/소 군간부·김일성등 보내 번의 종용/끝내 안통하자 숙소인 호텔에 감금 신탁통치문제는 소련군정과 조만식의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 소련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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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분국 창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0)
◎국내파에 견제당하는 김일성 대회기간 내내 박헌영측과 심한 갈등/소서 추천한 김용범이 책임비서 맡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등장은 북한의 정치적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김일성의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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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당 창당(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8)
◎김일성 고당에 「허수아비 정당」간청/「결사의 자유」선전하려 정략적 이용/공산당 책임비서로 내정되자 “발뺌” 해방후 북한의 두 지도자 조만식과 김일성은 상당기간은 외형상으로나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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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과 소 군정(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7)
◎겉으론 협력 속으론 갈등/이북5도 대표협 결성… 통치기구 정비/고당 “손은 잡되 소 잘못땐 비폭력 저항” 소 군정과 조만식의 관계는 미묘했다. 해방이 됐으니 자주독립국가를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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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만식 대통령 구상(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
◎45년 10월 “고당 제거” 정보입수… 김일성 불러 호통/소 정치장교/“찬탁” 설득하면서 제의/김은 군사책임자 내정 조만식에 대한 소련측의 관심은 특별했다. 그것은 당시 고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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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꼭 「김일성집권」 아니었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
◎연재를 시작하며/통일의 길목 역사복원 분단의 반세기는 우리 민족엔 인고의 역사이자 왜곡의 역사였다. 열강의 손으로 그어진 장벽의 뒤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위한 사실의 변조와 진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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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전선 공동의장/북한,박성철을 임명
북한 부주석 박성철이 최근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전위기구인 「조국전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공동의장에 추가선임된 것으로 밝혀졌다. 공동의장은 여연구·양형섭 정두환 정신혁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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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과용이 미군정과 충돌 불렀다"|해방 후「미-소 군정문제」학술세미나 요지
해방 후 미국·소련은 남북한을 38도선으로 양분해 약3년간 각기 다른 군정정책을 실시했다. 군정실시의 결과는 남한에서 이승만 정권을, 북한에서 김일성 정권을 각각 탄생시켰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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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05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김일성,조선은행권 남한반입/성시백내세워 남로당 못잖은 당조직 준비 성시백은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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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
◎전남노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99/제2부 해방 정국의 좌우대립/몽양,김일성에 지원 요청/편지보내 3당 합당ㆍ좌우합작위 내용 설명 3당 합당의 와중에서 여운형이 김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