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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한 '3천만의 연인' 문예봉, 북한서 찍은 영화 3편 만난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기획전시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해방공간의 영화인들’ 전시에서 공개되는 북한 영화 '용광로'(감독 민정식, 1949)'. 당대 최고 스타이자 월북 배우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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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스타 커플 최무룡·김지미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김기덕 감독의 ‘남과 북’(1965)은 한 여인을 두고 대립하는 남·북한 군인의 비극적 사랑을 다뤘다. 왼쪽부터 신영균·최무룡·엄앵란. [영화 캡처] “(나는) 국가보다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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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봄을 노래하고,청년은 여름을 동경했다
투코리언즈와 양희은의 앨범. 사진 가요114 제공 고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청춘예찬’이란 민태원의 수필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민망할 정도로 인위적이고 화려한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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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한국 첫 동시녹음 영화 목소리가 사라진 이유
기선민 기자 80분간 어둠 속에서 소리 없는 영화를 보는 건 기묘한 경험이었다. 배우들은 말하고 외쳤지만 관객은 들을 수 없었다. 26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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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여배우 김지미, 영화인 명예인 전당에
16일 그녀를 만난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영화인복지재단(이사장 정진우) 사무실이었다. 지난달 중순 입국해 임권택 감독 전작전, 부산영화제 회고전 등 정신 없는 일정을 치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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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최무룡씨 별세
원로 영화배우 최무룡(崔戊龍.사진)씨가 11일 오후 9시40분쯤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71세. 崔씨는 이날 경기도 부천 자택에서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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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강효실씨 별세
배우 강효실(姜孝實.사진)씨가 2일 오후8시20분 서울 강남삼성의료원에서 별세했다.65세. 평양 출생인 고인은 17세때인 지난 48년 평양국립극장 무대에서 데뷔,80년대까지 『맥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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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룡.최민수 父子 엇갈린 喜悲
원로영화배우 崔戊龍씨(66)와 당대의 인기스타 崔民洙씨(32) 父子가 매우 대조적인 길을 가고 있어 영화계 안팎에 씁쓸한뒷맛을 남기고 있다.1주일 간격으로 아버지는 영어의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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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트촬영의 대상 김기영감독
서울대 의과대학 의사 출신의 김기영(1919년생)은 조감독경력이 없는 이색감독이다. 부산피난시절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을때 평양고보 선배인 오영진으로부터 보자는 전갈이와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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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실을남파시켜라|최은희등 겨냥 간첩교육
1966년 12월 김연실은 지굿지굿한 순안 협동농장 농업노동자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복권된 것이다. 「노동개조」 처분을받은지 4년만이었다. 그러나 북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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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간연예인들의 이야기(9)|밑바닥인생 김연실
김연실은 1960년 5월 강홍식이 연출한 남한의 4·19 학생혁명 주제의 『항쟁의 서곡』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6·25때 납북된후 7년만의 영화 출연이었다. 김연실이 이 영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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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3)극단 『아리랑 고개』-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6)
이즈음 일본인 무용가 석정모과 석정소낭의 일행이 거의 해마다 서울에 와서 공회당에서 공연을 가졌다. 26년 봄에 왔을때에는 최승희가 석정의 문하생이되어서 그를 따라 동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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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396)|극단「신협」(제61화)|배우 강효실
피난중 지방공연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대구서 공연을 끝내고 부산을 거쳐 마산엘 닿았다. 공연작품은 유치진 원작의 『마의태자』. 공연시간은 저녁7시인데 6시부터 입장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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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제자는 필자|가요계 이면사(1)
고복수씨는 1929년 콜럼비아·레코드 회사에서 주최한 전선가요 콩쿠르에서 1등 당선함으로써 가요계에 데뷔, 『타향살이』·『짝사랑』등 많은 인기 곡을 불렀다. 1955년 은퇴 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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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의 무대|신극60년 상반기연극계
신극60년의 요란스런「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막을 올린 금년도 상반기의 연극무대는 맥풀린 관중의 박수 소리와 연극인들의 실의 속에 막을 내렸다. 국립극단과 극단「드라머·센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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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만추무대
결실의 계절, 늦가을을 맞아 무대는 풍성한 수확을 거둬들이게 되었다. 계속되는 가뭄속에 메말랐던 이해의 무대는 만추와 더불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선 극계의 원로 유치진